
빨책 <속죄> 편을 무심코 클릭했을 때만 해도
당연히 미나토 카나에의 그 <속죄>인 줄 알았다.
이언 매큐언이라는 작가는 알지도 못했다.
그래도 들어보니 방송 자체는 생각보다 재미있어서
-나로서는 드물게도-익숙치 않은 작가의 책을
동네 책방에 따로 주문하고 기다리기까지 해서 사보았다.
안타깝게도 빨책 2부는 스포일러 대방출 타임이란 걸 모르고 다 들어버리는 바람에
이 책의 중요 포인트를 다 안 상태에서
읽게 됐다.
하지만 상관 없을 거라 생각했다.
속죄라는 테마 자체에 관심이 있었기 때문에
'의도치 않은 어떤 오해와 이후의 행동이 상대방의 인생을 궤도에서 벗어나게 했다고 했을 때
이 작가는 어떤 식의 속죄를 그려낼까'가 궁금했다.
그런데 소설을 읽는 내내, 그리고 마지막에 이르러서 한층 더 신경쓰인 것은 스포일러를 알고 모르고 따위와는 좀 다른 부분이었다.
그보다는, 이 작가는 성(性)이나 성범죄에 대해
어떤 시각, 어느 정도의 이해를 갖고 있을까, 하는 생각이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았다.
소설 속에서 주인공 브리오니의 사촌언니 롤라는
브리오니의 집에 놀러왔다가
마침 같은 날 그 집을 찾은 다른 일행 중
폴 마셜이라는 처음 보는 남자에게 성폭행을 당하고 만다.
하루 동안 두 번.
이 사건은 어린 브리오니가 언니의 연인이자 장래가 촉망받는 무고한 젊은이 로비를
'어리석게도' 오해하고 모함해
인생의 나락으로 빠지게 만드는 데 결정적인 장치로 작용한다.
수백 페이지에 달하는 소설 속에서 거의 유일한 사건이며,
이후에는 주인공 나름의 '속죄'가 이어진다.
그리고 마지막 부분.
수십년이 흘러
성폭행의 가해자(폴 마셜)와 피해자(롤라)가 팔구십이 되어 어떤 모습으로 사는지에 관한 묘사가 나온다.
이 역시 스포일러일지 모르겠는데, 롤라는 여든의 나이에도 너무나 정정하고 대찬 재벌집 마나님으로,
폴 마셜은 불면 날아갈듯 노쇠한 아흔살 재벌 회장의 모습으로.
그렇다. 둘은 젊어서 결혼을 했고
장수와 부를 누렸다.
소설이 모든 것을 그려낼 수는 없으니 작가가 미처 하지 못한 어떤 비하인드 스토리를 독자가 나름대로 상상해 볼 수는 있겠지만
어쨌든 독자들에게 공식적으로 제공된 이야기는 저 정도이다.
롤라가 겪었을 육체적, 정신적 고통에 대해서는
몹쓸짓을 당한 후 브리오니 앞에서 망연자실해 하며 훌쩍이는 것으로 묘사된 한두 장면 외에는
그 어디에서도 언급이 없다.
성폭행이라는 끔찍한 범죄는
이 소설에서 그저 주인공의 심리상태를 고조시키고 사건을 진행하는 데 있어
결정적인 계기로서만 작용했을 뿐,
그 기능을 다 하자마자 언급될 가치를 잃은 것이다.
오히려 소설 속에서 줄곧 지탄의 대상이 되는 것은
악의는 없지만 분별력이 없고 고집스러워 죄 없는 다른 사람을 궁지로 몰아넣어 버리는 주인공 브리오니다.
그녀는 언니로부터도 비난 받고 스스로도 끊임없이 죄의식에 시달리며
소설 밖에서도(인터넷 서점과 영화평에서 본 평)
'그런 자기 만족이 무슨 속죄냐'며 갖은 비난을 받는다.
물론 그녀가 자신의 행동에 어떤 책임도 질 필요가 없다는 것은 아니지만
이쯤 되면 끔찍한 범죄를 저지르고도 그 누구로부터도 비난받지 않는 폴 마셜에 대한
그 지극한 무관심이 내겐 너무나 호의적으로 느껴지기까지 하는 것이다.
전 같았으면 성폭행이라는 소재를 다루는 것 자체에 입찬 소리를 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세상에 이미 온갖 끔찍한 성범죄가 넘쳐나는데
그걸 허구의 세상에서 좀 다루었다고 욕할 수만은 없으니.
그렇지만.
그렇지만.
어느 날 깨달은 게 있다.
세상의 남성 작가들이 쓴 너무나 너무나 많은 소위 문학 '작품'들 속에서
여성의 몸은 소설의 전개상 '불가피'하게 너무나 많이 그리고 끔찍하게 유린당한 뒤
가차없이-이것 역시 불가피한 것인지는 모르겠으나-외면당해왔다는 사실을.
외면하지 않는 작가들의 최선이라 해봤자
기껏해야 '피해자의 인생이 얼마나 기구해지는지'를 제삼자 시선에서 묘사하는 것이지
여성의 고통스러운 심리상태를 잘 묘사해 놓은 경우는
적어도 나는 보지도 듣지도 못했다.
그녀들은 고통스러운 일을 당한 것으로 나오지만
그 고통을 남성 독자가 유추하고 공감하기는 힘들어보인다.
반면 등장인물들만큼의 고통은 아니었겠지만
여성 독자인 나는 어딘가 힘들다.
모종의 꺼림칙함, 불쾌함을 느꼈지만
사람들이 칭송해 마지않는 권위있는 작가의 걸작이라는 타이틀 앞에서 눈 똑바로 뜨고 입바른 소리 하기란
심지어 온라인상에서도 쉬운 일은 아니다.
아무도 느끼지 않는 불편을 나만 느끼는 걸까, 하는 의식적/무의식적 자기 검열도 작용한다.
이 모든 것이 암묵적인 '침묵의 강요'였음은 근래 들어 깨달은 것이다.
저자는 이언 매큐언이라는 이름에서도 알 수 있듯
남성 작가이다. 국적은 영국.
그의 전작을 읽어본 적은 없지만 인터넷에서 찾아본 바에 따르면
상당히 일관되게 다소 자극적이고 변태적인 성범죄가 단골 소재로 등장한다고 한다.
하필 또 이 작품만 그런 것도 아니라니.
성범죄를 다뤄서는 안 된다는 것이 아니다.
고전소설도 아닌데 무조건 권선징악으로 끝나야 한다고 생각하지도 않는다.
그 정도로 나이브하지는 않다.
다만
소설가가 어떤 부조리와 참상을 적나라하게 다룬다 하더라도,
그게 대단히 현실적인 것이라 하더라도,
소설 속 피해자의 입장에 공감할 독자를
어떤 식으로든 배려할 수는 없는 것일까?
이 소설 속에서는 그런 배려는커녕 롤라가 가해자인 폴 마셜과 결혼해 부와 명예를 움켜주니 채 무언가에 영합해 사는 모습이 묘사되어 있는데
작가는 과연 어떤 의도로 이런 묘사를 집어넣은 것일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성범죄의 희생양이 될 가능성이 거의 제로에 가까운 남성 작가가
소설 속에서 성범죄에 대해 너무나 가볍게 다루고,
그 피해자에게는 어떠한 공감도 할 여지를 남겨두지 않은 채
서둘러 다음 전개로만 넘어가며,
심지어 그런 소재를 여러 작품에서 종종 다뤄왔다는 것.
이것만으로도 이언 매큐언이라는 작가에 대한 내 믿음은-유치하지만 별로 나타내자면-하나도 주기 힘들다.
그나마 단 하루 사이에 저택에서 일어나는 크고 작은 일들과
그로 인해 촛불 흔들리듯 일렁이는 사람들의 심리 변화,
2차대전 당시 덩케르크 퇴각 장면을 위해 등장하는 온갖 무기와 폭격장면 묘사,
수련간호사가 된 브리오니의 생활 묘사가 상당히 충실하니
작품 자체에는 無별의 치욕은 주지 않기로.
하지만 그래도 역시
내게는 입이 쓴 소설이었다.
별은 한 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