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일 아침의 뻘짓
#1
방금 전.
검색할 게 있어 크롬 열었다가 생일축하케익 그림 보고
오늘 구글 창립기념일인가? 하고 클릭해보니
내 프로필 나옴...
식구들도 '한 살 더 늙은 걸 축하한다'는 한마디만을 남기고 우수수 볼일들 보러 나간 빈집에서
구글이 내 생일을 축하해준다. 이런 깨알센스 구글같으니.
어지간한 무관심한or눈치없는 애인보다 구글이 나을지도...
영화 HER가 심히 공감가는 아름다운 생일날 아침.
#2
그리고 나서 핸드폰을 보니
"OO고객님의 생일을 축하드리며! 생일달 특별할인쿠폰 증정!"
복사한듯 똑같은 문구의 쇼핑몰 할인쿠폰 알람 메시지들이 생일카드를 가장하고 와 있고
이제 몇 남지 않은 인생친구들로부터 온 축하 문자에는 어김없이
'이 더위 속에 태어나 수고한다'는 글들이 춤추고 있다.
그래. 너희들은 진정한 내 베프야.
나를 나보다 더 잘 아는.
반백년에서 십 년 정도 덜 산 나는 아직도 나를 가끔 잊는다.
어제까지 그렇게 앞머리가 소금에 절인 배추처럼 이마 땀에 절여져 있고
온몸은 스티커 떼어낸 유리병처럼 끈적였건만
그런 내 진정한 자아는 까마득히 잊고
아침에 시민대학 들으러 나가는 엄마 뒤꼭지에 대고
"냉동실 고기로 맛있는 거 해놓을게. 저녁 먹지 말고 와!"
라는 말을 하고야 말았다.
잠자리가 뒤숭숭하더니 이젠 헛소리를 맨정신에 한다.
아니면 정말 더워서인가....
역시...생일 축하 메시지에 통찰력이 가득했던 녀석들은 내 베프야. 믿음직스럽다.
앞으로도 내가 자아를 잊을 만할 때 일깨워주길. ㅎㅎㅎ
#3
하필이면 생일 아침에 내 이름으로 이미지 검색을 하게 됐다.
이유는 불문에 부친다.
아무튼 결과는 묘했다.
전국의 내이름녀들은 쇼핑몰 피팅모델 아니면 신부, 초등학생, 대학생 정도로 보였고
간혹 그녀들의 아기들 사진이 섞여있었다.
내 사진은 옮긴 책 사진 몇 장이 전부.
내 얼굴이야 애초에 공개할 필요가 없으니 차라리 다행이다.
재밌는 건 내 이름이 (성 포함해서) 드문 편인데
전국에 나와 동명이인이 생각보다 많고
다들 아주 정상적(?)으로 보인다는 것.
이름이 같다고 운명이 같을 수가 없겠지.
토정비결 이름풀이 따위 더욱 믿지 말아야겠다.
라는
이상한 결론을 내리게 된
생일 아침의 뻘짓. 끝.
일이나 하고
어마마마 진지상이나 차리러 갑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