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학이 안 맞거나 혹은 없거나
오늘 오후 수업시간.
교수님이 말씀하셨다. 요새 졸업생들 취업상황이 좋지 않다고.
예년에는 그래도 5월이면 대부분 취업이 됐는데 올해는 택도 없다고.
그러면서 이어지는...졸업생(학생)들의 태도에 관한 질타.
월 500을 준다해도 졸업생들이 안 간단다. 지방이라고.
심지어는 근무처가 수원 인천이라 안 간다는 학생도 있었단다.
개인적인 사정은 덮어놓고 하는 얘기였고 또워낙 경쟁이 치열한 시기다 보니
솔직히 내 귀에도 다소 배부른 소리로 들리기는 했다.
혹은
삼성에 일자리가 났는데 안 간다는졸업생도 있었단다.
교수가 이유를 묻자
"철학이 안 맞아서요"라고 대답했단다.
그런데 이한 마디에교실 전체가 갑자기 비웃음과 야유의 도가니가 됐다.
'철학이'를 강조하는 교수..님?의 말투에서도 가소롭다는 식의 조소가 뚜렷이 느껴졌다.
순간 불쾌해졌다.
철학이 안 맞아서 입사하지 않겠다는 게 왜
얼굴도 모르는 후배들에게 비웃음을 들어야할 일일까?
널리 알려져있다시피 삼성은 우리 경제에 기여했던 만큼이나 많이 혹은 그 이상으로
사회적으로 지탄받아 마땅한 각종 부도덕하고 불법적인 일들을 저질러왔다.
조세포탈, 편법증여, 변칙상속, 순환출자, 정치자금 조성, 무노조주의 견지...
그 졸업생의 '철학'이란 게 어디에 방점이 찍힌 건지 구체적으로야 모르겠지만
삼성의 이런 일련의 행태와 아주 무관하지는 않을 것이다.
그리고 이는 기업의 도덕성과도 관련되는 부분이다.
삼성은 분명세계 굴지의 기업이니만큼
직원들 입장에서 보면 대체로 급여수준도 높고 그런 점에서 남들의 부러움을 한몸에 받고 있겠지만
기업의 도덕성 측면에서는 꼭 자신의 회사가 자랑스럽지만은 않을 것이다.
(도덕적으로도 자랑스럽다거나...잘 모르겠다거나..하는 사람은 아예 논외다)
그 졸업생은 그런 면을 중요시했는지도 모르는 일이다.
'어떤 이'에게는 급여의 많고 적음 못지 않게 그런 요소도 중요한 선택의 기준이 된다.
그런데
왜 사람들은 그렇게 크게 그를 비웃은 것일까?
'철학'이라는 말 자체가 주는'척'하는 느낌 때문에?
아니면 당장 수입이 없는 자에게는
철학이니 도덕성이니 가치관이니 따지는 것 자체가 사치라도 되기 때문에?
그럼 회사가 돈만 많이 주면 어떤 이념으로 어떻게 굴러가든 상관없고
나는 내 경력만 쌓고 월급만 따박따박 받으면 된다는 건가 뭔가.
미처 정리되지 않은 생각으로나마 불만을 표출해 봤지만
토론시간도 아닌데 별 것도 아닌 걸 가지고 괜히 혼자흥분한 사람이 될 뿐이었다.
철학이 맞지 않는 기업과
철학이 없는 자.
함께 하기 피곤하고 불편하기로 따지면 후자가 더 심할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