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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랜저 뽑던 날걷고 쓰고 그린 것들/기억의 습작 2004. 3. 26. 23:25
스크린 톤도 여기저기 벗겨지고..선도 많이 삐뚤빼뚤한 이 그림을 두 번째로 올리는 이유는
만화 배운답시고 화실다니던 시절에 처음으로 완성시킨 '차'이기 때문이다.
당시 우리 화실에 있던 마초이즘의 냄새를 강하게 풍기던 한 오빠가
대충 그린 내 자동차 밑그림(스포츠카였음)을 보더니 '밀가루 반죽'해 놓은 것 같다고 했었다.
초등학교 시절 줄넘기 시험을 교실에서 볼 때 담임샘이 내가 줄넘기 하는 걸 본 후
"떡방아 찧니?"하고 핀잔주었던 것 이상으로 자존심 구겨지는 소리였다.
그래서 미끈하게 쭉 빠진 차들이 초보들에겐 외려 그리기 어렵다는 데 착안
당시로서 고급차이자 그리기 좋은 각도였던 그랜저 사진을 보고 며칠 걸려 그린 게 이거다.
겨우 이까짓 걸 며칠 걸려 그리느냐고 할 수도 있지만
여자는 메카닉에 약하다는 통념을 내가 뒤집을 수 있다는 신념 아래
계속 그리고 지우고 그리고 지우고를 반복하며 그려낸 것이 이 차이기에 애착이 간다.
이 때 밖에 나가면 내 눈엔 차 밖에 안 보였더랬다.
힘쓰는 일도 아니고, 여자가 남자보다 메카닉 배경에 약할 이유는 없다.
다만 흥미가 다를 뿐이다.
대부분의 남자만화가들은 여자 순정만화가들이 그토록 공들여 그리는
등장인물의 속눈썹 한올한올, 섬세한 표정의 변화를 따라서 표현해 내지 못한다고
욕을 먹지는 않지 않는가?
잡솔이 길어졌지만. 결국 결론은..공들여 그린 그림은
그것이 모델과 닮았든 아니든간에 소중하고 멋진 것이라는..
참으로 상투적인 명제이다....따라서 나는 때타고 톤벗겨지고 초라한
나의 그랜저가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