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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동북아역사재단에서
    골판지 2013. 12. 5. 00:54

     

    아버지의 유작이 될 번역서의 교정 때문에

     

    ㅅ선생님을 뵈어야 해서 어제 점심을 먹자마자 서둘러 길을 나섰다.

     

    12월4일 오후 2시 20분께 충정로역 근처의 동북아역사재단이 입주해있는 건물.

     

    초행길이라 늦지 않도록 일찍 나선 덕분에 터무니없이 이른 시간에 약속장소에 도착하고 말았다.

     

    너무 일찍 연락하는 것도 예의가 아닌 것 같아

     

    1층 로비의 의자에 걸터앉아 유리창 너머 풍경을 멍하니 바라본다.

     

     

     

    중국발 스모그로 하늘은 뿌옇지만 그다지 춥지는 않은 겨울날 오후.

     

    건물 바로 앞을 서울 도심에서는 보기 힘든 철길 건널목이 지나고 있고

     

    오후 담배 한 대 태우러나온 남자 회사원 몇 명이 정문 근처에 듬성듬성 서 있다.

     

    그리고 그 유리문을 열고

     

    금방이라도 현실이 될 것만 같은 아버지의 환영이

     

    로비로 들어오려 하고 있었다. 

     

     

     

    '아빠...'

     

     

     

    이 곳을 아버지는 수도 없이 다녀가셨던 거구나.

     

    저렇게 저 유리문을 열고 들어왔다 나갔다 하셨겠구나.

     

    원고 뭉치가 가득 든 봉투를 옆구리에 끼고 등에 맨 배낭에도 싣고

     

    은퇴후 가족들로부터 얻지 못한 삶의 낙을 찾아

     

    백발의 아버지는 이곳에 그토록 수도 없이 발걸음하셨겠구나...

     

    그런데 나는 오늘 처음 와 보는 구나...

     

     

     

    시간이 거의 되어 자료실을 찾은 나를 반긴 것은 ㅅ선생님,

     

    그리고 우산, 슬리퍼, 볼펜 같은 아버지가 생전에 쓰시던 소소한 물건들.

     

    유품이라고 하기도 애매한 이 잡동사니 꾸러미를

     

    왠지 차마 똑바로 쳐다볼 수가 없어 얼른 종이백에 담아버렸다.

     

    닳고 해진 뒤축으로 솜이 삐져나온 그 슬리퍼마냥

     

    외롭고

     

    외로웠던

     

    아버지의 뒷모습이 다시금 불쑥 떠오를 것만 같아서.

     

     

     

    불현듯 그런 모습에 맞닥뜨릴 때마다

     

    도대체 무슨 생각을 해야할지

     

    어떤 말로 무엇을 표현해야할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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