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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일본 컴플렉스
    골판지 2004. 9. 25. 00:34

    컴플렉스란 단어가 있다.

    흔히 '열등감' '자격지심' '아킬레스건'따위의 의미로 사용하지만

    이런용법들은'컴플렉스'의 본개념에서 가지 친 개념 정도이다.

    그것보다는 차라리,대상에 대해 주체가 느끼는

    여러가지 복잡 다단한 감정과 사고가

    투사되어 뭉쳐버린 심리적 실체의 덩어리...

    에 가깝다고생각한다. (사실 예전에 배웠던 개념이 정확히 떠오르질 않는다 -_-;;)

    어떤 한 대상을 접했을 때

    그 대상에 대해 중립적인 사람과 컴플렉스를 지닌 사람과의 반응이 사뭇 다른것은 이 때문이다.

    레드 컴플렉스가 그 좋은 예일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세월이 흐르고 교류가 진전되면서 많이 희석된 듯 보이지만

    반일감정

    여전히 일본 컴플렉스의 강력하고 중요한 요소이다.

    물론 여기서의 '일본 컴플렉스'란 말에

    한국이 일본보다 열등하다는 식의 터무니없는 의도가 깔려있다고는

    아무도 해석하지 않겠지.

    그들에 대한 우리의

    분노, 질투심, 증오, 경쟁심, 호기심, 열등감, 우월감, 호감, 경외심, 멸시..

    이 모든 긍정과 부정의 에너지가 들끓고 있는 것이

    일본 컴플렉스(복합)가 아닐런지...

    뜬금없는 얘기로 시작했는데;;

    지금 후지 TV를 보고 있자니 몇 가지 생각나는 점이 있어서 주절거려 본다.

    일본인의납북 문제가 거론된 것은 꽤 오래 전부터의 일이지만

    내가 일본에 가 있던 2002년은 유난히 그 문제로 시끄러웠다.

    고이즈미와 김정일과의 만남이 이루어졌던 해이기 때문이기도 할 터이다.

    일을 쉬거나 해서 집에 있으면 하루종일, 평소 일을 하러 가기 전이나 마치고 나서도

    집에서 하루에도 몇 번은 북한 뉴스를 접했고

    그 중에 한 번 이상은 반드시 납치문제를 다루고 있었다. (나머지는 핵 아니면 김정일..)

    그들의 한반도, 그 중에서도 북한에 대한 관심은(나쁜 의미든 아니든) 대단해서

    룸메 언니들과 나는'북조선'이 없으면 얘들은 뉴스시간이 반으로 줄겠다고

    이야기 하곤 했었다.

    아무런 죄도 없이 끌려가 수십 년간, 고향과 가족을 그리워하며

    감시와 고립의 생활 속에 살아온 일본인들의 이야기가

    드라마 형식으로재현되고, 가족들의 기자회견이 이어지는 모습은

    많은 일본인들을 동요와, 슬픔과, 분노의 도가니로 몰아넣었다.

    그들은 반인륜적인 납치가 행해질 뿐만 아니라그에 대해 반성은 커녕

    모른 체와 배짱으로 일관하는 북한의 뻔뻔스러운 태도에

    이를 갈았으리라.

    이러한 일련의 사태를 지켜보는 나나 언니들의 마음과 표정은 그러나,

    당연하게도,

    일본인들의 그것과 같을 수가 없었다. 절대로..

    특정 장소와 시간을 배경으로 하는 역사적실체의 전모를

    자로 재듯이 계량하거나 일률적으로 비교할 수는 없다고 하더라도

    지난 한 세기 동안..혹은 그 이상..

    우리의 혈육이 당한 유린과 착취, 흘려야 했던 피와 눈물을 생각해보면

    ..그들의 그 눈물겨운 단장(斷腸)의 스토리에

    쉽게 감정이입이 되지는 않는 것이다. 아니, 되어서는 안 되는 것인지도 모른다.

    그것은 이미,

    북한의 태도가 잘못되었다 어떻다, 혹은

    납치당한 일본인 한 사람 한 사람에 대해

    인간으로서의 동정심과 연민을 갖느냐 마느냐의 문제는 아니었다.

    혹자는

    일본은 밉지만 일본인 개인 개인은 무슨 죄가 있겠냐고도 한다.

    사실 일본인들은 알려진대로, 많이 착하고, 친절하며 상냥하다.

    하지만 어떤 때에는무지가 죄가 되고 무관심도 악이 된다.

    더욱이 그것이 자신들이, 혹은 그 부모세대가 저지른 끔찍한 홀로코스트에 대한 무지라면

    어떤 의미에서 그건 은폐나 왜곡에 필적하는 원죄이다.

    서대문 형무소 앞에 관광(?) 온 어떤 일본 노인 여행객들이

    참혹한 고문과 감금 시설 등을 둘러보며 "이거다 거짓말이야!" 하며 떠들어대던 걸 듣던 순간

    두 주먹에 느껴지던 서늘한 적의는

    위선과 뻔뻔함 보다는, 무지와 무관심에 대한

    증오의 표현이었다.

    방금끝난방송의 내용 역시

    수십년 전 어느 바닷가 마을에서

    열 세살의 나이에집 밖에잠깐 외출했다가 납치 당해

    이제오십대 중반의 아저씨가 되어 있는 타케시라는 이름의 일본인 남자와

    그를 만나기 위해 반평생을 보낸, 그의 어머니에 대한 다큐멘터리이다.

    이 가슴 아픈 이야기를 보면서 무표정으로 일관할 수 밖에 없는 것,

    피가해자가 명백한 이 상황을 지켜보며 동상이몽의 슬픔을 느끼는 것,

    머릿속은 그들과 다른 계산으로 차갑게 식어내리는 것,

    그것이 내가, 룸메 언니가, 혹은 많은 한국인들이

    가질 수 밖에 없는

    일본 컴플렉스의 한 단면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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