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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가 지면
흐트러진 옷매무새를 고치고
집을 나선다.
2년 가까이 살면서
밟아보지도 않았던 집근처 외딴 길을
걷고
걷고
또 걷는다.
아니
걷는다기보다는 어쩌면
길에 실려
떠다닌다고 하는 편이 낫겠다.
목적지도 없이
누군가를 만나기 위해서도 아닌
부유(浮遊)와도 같은
짧은 유랑.
걷다 보니
강줄기도 나오고
산자락도 나오고
달동네도 나오고..
이대로
길을 잃었으면 좋겠어.
라고 되뇌면서도
정신을 차려보면
징글징글한 귀소본능에 이끌려
어느샌가 두 발은 집앞에 와 있다.
그렇게
머릿속이 진공상태가 되어야
그날은 겨우 잠을 잔다.
내일도 또
무수한 감정의 찌꺼기들을 빚어내고
떠돌아다니며 그것들을 버리고나서야
겨우겨우 웅크린채
잠이 들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