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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결혼=행복?
    골판지 2014. 11. 23. 00:47

     

    결혼=행복...???

     

    너무 진부해서 글 내용에 대한 호기심이라고는 눈곱만큼도 일게 하지 않을 제목이지만

    둔중한 내 머리는 아무리 두드려도 이 외에 다른 표현이 나오지 않는다.

    원래 별로 관심가는 주제가 아니라 그럴싸한 논리나 표현을 생각해둔 적도 없고.

    그런데 남들은 불토네 어쩌네 하는 황금같은 주말 밤에

    하필 이런 궁상스런 글을 적는 것은

    요며칠 이 주제와 관련해서 오갔던 몇 마디의 '말'들이 떠올라서다.

     

     

    1. 기타교실에서

     

    요즘 기타를 배우러 구에서 운영하는 교육센터의 기타교실에 다니고 있다.

    낮시간대다 보니 아무래도 남성보다는 여성 수강생들이 압도적으로 많은데

    성별상 나도 같은 여자라는 것 빼고는,

    유치원~대학생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연령대의 아이들을 키우고 계신 어머니들이 주 멤버인

    이 기타교실에서 나는 항상 이질적인 존재다.

    특히 그나마 어르신들이 많았던 초급반보다

    내 또래가 많은 중급반에서 묘하게 그 이질성이 두드러지는 느낌이 든다.

    결혼을 하지도, 아이를 낳지도, 키워보지도 않은 사람이

    다 해본 사람들 사이에서 혼자 겉도는 느낌이 드는 것은 사실 당연한 것이려니 한다.

    그런 '고립' 혹은 '거리감'은 비단 결혼, 임신, 육아 뿐 아니라 어떤 것을 기준으로 해도 성립된다.

    또 사실 어느 정도의 거리감은 가시복이나 고슴도치의 가시와도 같아서

    딱 고슴도치 타입인 나 같은 사람에게는 일종의 안도감을 주기도 하기에 큰 불만은 없었다.

    그러다가...

    얼마전 발표회가 끝나고 뒷풀이 자리에서 그 거리감이 조금 무너질 낌새를 느꼈다.

    모두가 암묵적인 연대감으로 맺어져있는 집단에서 새삼스레 거리감이 무너진다함은,

    이질적인 존재였던 내가 도마 위에 오를 차례가 됐다는 뜻이다.

    으레 그러하듯, 호기심 어린 시선이 듬뿍 담긴 예의 그 호구조사가 시작되었다.

    대개는 나에게 '말을 까'도 되는지, 즉 자신과 나의 연령상의 서열을 확인하면서

    이 질문의 연쇄는 시작된다.

     

    "나이는 몇인지? 무슨 일을 하길래 이 시간에 이런 데 다니는지?"

    "결혼은 했는지? 아이는 있는지?"

    "결혼을 안 했다면 왜 안 했는지? 앞으로도 아예 결혼할 생각이 없는 건지?"

    "남자친구나 애인은 있는지? 없다면 주변에 사람이 없는 건지? 눈이 너무 높은 건 아닌지?"

    "그럼 지금 누구랑 사는지? 형제자매는 있는지? 있다면 그(녀)도 결혼을 안 했는지?"

    "부모님, 특히 어머니가 (딸이 아직까지 결혼 안 한 것에 대해) 뭐라고 안 하시는지?"

     

    익숙해질 때도 됐건만,

    이런 질문에 대한 면역 형성 여부는 사실 '때'와는 큰 상관이 없는 것인지...

    나는 몇 가지 법칙을 체득했을 뿐 여전히 대처에 충분히 능숙해지지는 못했다.

    법칙이란 이를 테면, 이런 질문들에 자폭성 대답을 하지 않고 사실대로,

    그러니까-나는 '결혼을 꼭 하고 싶다' or '절대 하기 싫다' 하는 생각 자체가 별로 없고 

    작년까지 혼자 살다가 내 결혼과는 상관 없는 다른 집안 사정으로 부모님과 함께 살게 되었으며

    부모님도 내 결혼을 그다지 열성적으로 바라지 않으신다-는 식으로 대답하면

    상대는 그 말을 곧이곧대로 믿어주지도 않을뿐더러 나는 그 모임에서 더욱 고립되며

    자칫하면 죄 없는 내 어머니의 자녀 결혼관에 대한 이차심문이 시작되기도 한다는 것이다.

    그래도...대개는 사실대로 말해버린다.

    어차피 줄줄이 이어질 대화-라고 쓰고 취조라고 읽는다-의 어딘가에서 본심이 드러나므로.

    그 중 하나가 "평생 결혼 절대 안 할 거라 작심한 건 아니예요" 였는데,

    이 대답에 대한 누군가의 일성.

    "그나마 다행이다. 쯧쯧."

    ...

    다행...?

    왜 다행인걸까?

    대체 왜 '꼭 독신을 고집하지 않는 것'이 '다행'인걸까?

    이 말은 배우자 없이 사는 사람은 불행하거나 불쌍해질 것이라는 뜻을 내포하는 것일까?

    나는 꽤 뒤끝이 있는 사람이라 종종 물어본다. 이번에 그랬다.

    다행이란 多幸, 즉 행복이 많다는 뜻이니까.."결혼생활 많이 행복하시냐"고.

    그러자 그녀들의 표정이 달라진다.

    얘는 뭐 이런 걸 다 물어, 하는 표정.

    어쩌면 나는 내내 그런 표정이었을텐데

    그녀들에게 내 표정은 안 보였던 것일까.

     

    이제 밥을 볶기 위해 감자탕을 해치워야한다며 함께 먹다 남은 식은 감자탕을

    내게 묻지도 않고 유독 내 그릇에만 국자로 마구 퍼주며 '많이 먹으라'던 한 어머니의 마음씀은 

    인심이었을까, 무심함이었을까.

    결혼에 관한 그녀의 질문공세를 받을 때와 비슷한 느낌이 들었다.

     

     

    2. 오늘 있었던 친구의 결혼식에서

     

    그렇다. '결혼식', 다른 날도 아니고 '결혼식날'이었다. 나는 좀 더 마음의 각오가 돼 있어야 했다.

    하지만 늘 그렇듯 각오니 준비니 참 서툴고 낯선 행위다, 대책 없이 사는 나같은 사람에게는.

    대학원 동기의 결혼식날.

    예상했던 면면들이 모였다.

    그녀들은 이미 정시에 모여 몇 년 전 수업 당시와 똑같이 철저히 편을 갈라 앉아있었으며

    나도 그때처럼 또 혼자 지각해서 한쪽 끄트머리를 차지하고 앉았다.

    식이 진행되는데 동기 중 하나인 A가 운을 띄운다.

    며칠 전 내가 없는 다른 동창모임자리에서 얘길 했는데

    동기 약 열 명 중 오늘 하는 친구의 결혼식이 마지막이 될 거라는 얘기였다 한다.

    그러면서 A는 '00언니(나)가 아직 결혼을 안 했지 않냐'고 다른 동기인 B에게 물었더니

    B가 '걔(나)는 결혼 안 할 것'이라고 말했다 한다.

    아..

    그런가...?

    요즘들어 무언가를 단정적으로 말하기가 상당히 꺼려진다.

    직업 특성상 말을 할 때마다 표현을 항상 골라야하다보니 더 심해진 것 같은데

    그래도 단정적으로 하는 게 딱하나 있다면,

    절대 나나 누군가의 미래에 대해 단정짓지 않는다는 것. (애초에 그럴 수가 없으니!)

    이 원칙만이 유일하게 단정적으로 마음속에 자리잡고 있다.ㅋ

    따라서 내가 '결혼을 안하겠다'고 스스로 공언한 적은 없으니

    저 말은 내 결혼 가능성을 제로(0)로 점친 B의 독자적인 판단이었을 것이다.

    호,

    그렇구나.

    이번 일 뿐 아니라 B는 특정 대상에 대한 평가나 나름의 예상을 종종 말하곤 했는데

    그것이 사실로 드러날 때가 있어 나는 그녀의 통찰력에 내심 감탄하곤 했다.

    그리고 B의 나에 대한 이야기가 아주 근거가 없는 것도 아니라 ㅎㅎ

    이 역시 그러려니 할뿐 더 물어보지는 않았다.

    (물론 나도 내가 어찌 될지가 관심사다. 그것도 초미의 ㅋ)

    그런데 내 시덥잖은 반응이 영 성에 차지 않았는지 A가 다시 말한다.

    "이러다가 오히려 언니(나)가 행복해지는 거 아니에요?"

     

    ...

    말과 글을 다루는 일을 업으로 삼다 보니

    자꾸 자기 검열을 하게 되어 안그래도 눌변에 글재주도 없는데 점점 더 말도 글도 이상해진다.

    그런데 딱 그만큼,

    다른 이들의 말과 글에는 예민해지는 경향이 있다.

    내가 어그러지는만큼 남들에게도 관대해지는 게 아니라 더 가차없어지는 것.

    누군가와 대화를 하다가 가끔 나도 그 이유를 확실히 모르는 채 탁,하고

    생각의 걸음이 멈추는 지점이 있는데,

    마치 잔가시가 많은 생선을 먹다가, 꼭꼭 씹어 삼키면 큰 탈은 나지 않지만

    혀끝의 이물감만큼은 분명히 전해지는 잔가시를 상대방의 말 속에서 느낄 때다.

    인정한다. 사실 이건 그저 직업병이라기보다 타고난 밴댕이속으로 인한 부분이 크다는 것을. ㅎ

    상대방이 일부러 내가 먹을 생선에 잔가시를 박아놓은 게 아니라는 것도.

    꾹꾹 씹어 삼키면 대개 무탈하다는 것도.

    이 경우에도 그랬다.

    '오히려'라는 말은 부자연스럽거나 부당한 상황을 표현할 때 쓰이는 말이지만

    A는 무의식중에 내뱉었을 가능성이 컸다. 내 말 속에도 얼마나 많은 사족과 실언이 있었던가.

    '혼자인 내가 행복해지는 건 부자연스럽거나 부당하다는 건가'라는 삐딱한 생각도 잠시 들었지만

    그냥 넘어갈 수 있었다.

    그래서 그냥 넘어갔다.

    왜냐면 나는 '이미 행복하다'고 생각하고 있으므로.

    그리고 실제로 행복하므로.

     

    요 몇 년 간 개인적으로 힘든 일들이 조금 이어졌고 내가 거기에 잘 대처했다고는 할 수 없지만

    이미 지나간 일들이다. 고로 내가 어쩔 수 없다.

    앞으로도 세상에서 흔히 말하는 즐겁고 안정되며 외롭지않은 삶을 누리기는 힘들지 몰라도

    그런 삶을 얻기 위해 내가 쏟은 노력이랄 게 솔직히 별로 없다. 고로 불만이 없다.

    아침에 일어나 밤에 잠들 때까지 끼니 거르지 않아도 되고 냉골방에서 병을 키우지 않아도 되며

    하루에 적어도 한 가지는 스스로 좋아하는 일을 하고 있다. 

    더 이상 무슨 행복을 더 바랄까. 게으름뱅이에게는 이 정도도 과분한데.

    ...요즘 늘 하는 생각들이지만 이런 장황한 얘기들을 펼쳐봤자

    영 군색한 자기위안으로만 들릴 것 같아 그만두었다.

    대신 이번에는 쓸데없는 반문따위 하지 않고 상대가 원할 법한 대답을 해주었다.

    "글쎄, 남들이 말하는 단란하고 그림같은 가정이 난 왠지 멀게 느껴지던데."

     

    결혼은

    행복을 보장해줄까? 아니 최소한, 그 가능성만이라도 높여줄까?

    그리고 이때의 행복이란, 행복한 가정이란, 단란하고 화목하며 그림같은 가정일까?

    그 어떤 등호도 부등호도

    지금의 나는 선뜻 그려넣을 수 없다.

    결혼보다 먼저, 그 앞에, 뒤에, 아래와 위에, 사방에

    '삶'이 있다.

    나는 한때 '인생, 즉 사람들의 삶의 목적은 행복해지는 것'이라는

    아무런 고민도 통찰도 울림도 없는 명제에 아무런 이의도 달지 않고 쉽게 동조해버린 적이 있다.

    그런데 어느날 생각해보니

    행복하게 살았다고 제 삶을 회고하는 사람들은 많이 보지 못한 것 같았다.

    그렇다면 목적을 달성 못한 그 많은 이들의 삶은 무의미한 것, 무가치한 것인가.

    그럴 리가.

    사람이 한낱 우주의 먼지에서 진화한 우연의 산물이라 믿던 시절에는 그렇게 생각했던 것 같지만

    지금은 조금 다르다.

    사람이, 삶이, 행복이

    그렇게 단순하고 간단한 것일 리가 없다.

    진리는 단순할지 몰라도 그것이 발현된 이 세상의 모습은 결코 단일하지 않다.

    행복하면서도 그 행복을 자각 못한 사람이 많이 있었을 것이며

    행복이라 믿었던 것이 사실은 행복이 아니었을 수 있을 것이며

    행복은 달성하는 것이 아니라 그저 느끼는 것일런지도,

    행복 그 자체와 행복감도 비슷해보이지만 다른 것일런지도 모른다.

    아마도 행복이란

    객관적인 상황도 목적도 결과도 아닌 그냥 지금 이 순간 내 마음의 상태.

    그런 것을 결혼이라는 객관적인 상황과 억지로 결부시키는 데서

    나와 주변인들의 핀트가 조금씩 엇나가기 시작한 게 아닐까.

    마치 모래밭에 손가락으로 그림을 그리며 이미 즐거워하는 아이에게

    그림은 종이 위에 물감으로 그려야 폼이 난다며 화려한 화구세트를 눈앞에 펼쳐놓는 어른들처럼.

     

    애당초 이렇다할 결론 없이 그저 생각이 가는대로 쓰다보니 글이 대책없이 길어졌는데,

    아무리 물음표로 시작한 글이지만

    끝낼 때만큼는 마침표로 끝맺어야

    변변찮은 글이나마 쓰느라 들인 공, 읽느라 들일 공에

    값을 하는 거겠지.

     

    결혼=행복?

    글쎄요.

    결혼을 하면 '더' 행복해지거나 '덜' 행복해질 수는 있겠지만

    어쨌든 지금 이 순간, '이미 행복'합니다.

    앞으로의 삶...

    꼭 더 행복해지기 위해서가 아니라

    그냥...살아지는 한 조금 더 살아보는 거예요.

    해보진 않았지만, 아마 결혼이란 것도 그런 것이 아닐까...생각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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