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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나이가 궁금해?골판지 2016. 2. 28. 16:13
존비법이 엄격한 사회는 일상적으로 엄청난 감정노동이 이루어지는 사회이다
나이를 따지는 문화는 권위주의나 유교적 가치관, 봉건적 인간관계 등과 한데 묶여서 비판받곤 한다. ‘나이주의’라는 신조어마저 생겼다. 그런데 ‘나이주의’를 비판하는 사람들이 종종 놓치는 사실이지만, 나이를 따져서 높임말 사용 여부를 결정하는 것은 전통의 잔재라기보다는 오히려 근대화가 만들어낸 새로운 습관이다. 조선시대 양반은 아무리 나이가 어리더라도 상민에게 말을 놓았다. (133쪽)
한 사람에게는 끊임없이 존중을 표현하게 하면서, 다른 사람에게는 그러한 표현을 생략하도록 허용하는 존비법의 체계는 인간관계가 원활하게 굴러가는 데 필요한 감정노동을 ‘아랫사람’의 몫으로 떠넘기는 문화와 연결되어 있다. 이 문화는 아랫사람의 감정을 배려하지 않는데, 그에게도 감정이 있음을 몰라서가 아니라, 그의 감정이 그만한 배려를 받을 가치가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136쪽)===========================================
인류학자 김현경의 책 <사람, 장소, 환대>의 일부분이다. '비:파크레터'라는 서평 사이트에서 온 메일에 소개되어 있었다. 읽고 있는데 얼마전 한 모임에서 옆자리에 앉은 처음 보는 사람이 대뜸 "몇 살이에요?"하고 물었던 것이 생각난다. 이런 류의 질문에 신물이 났지만, 오죽 물어볼 게 없으면 저럴까 싶어 두말없이 대답했다.
"마흔이요."
"마흔..? 아...뭐 그래도 어려보이네?" (그녀는 나보다 연상으로 보였다)
라고 말하는 상대방의 말은 이미 상당히 '가벼워져' 있었다. 그러더니 질문의 주인은 '마흔'이라는 내 대답에 맞춰 바로 그 모임의 멤버들 사이에서 내 '서열'을 정리해 주었다.
"마흔이면 그쪽(나)이 여기서 막내는 아니네. XX씨라고 있는데 그 친구가 서른 아홉인가 그러니까..가만, 걔도 올해 마흔이었던가? 아, 그럼 태어난 해가 언제지? 몇 년 생이에요?"
나이가 같으면 생년 확인을 통해서라도 '정확한' 선을 그어야 직성이 풀리는 것일까. 작은 한숨이 새어나왔지만, 에라, 나이도 말해버렸겠다, 생년 따위 그냥 말해주고 말자 싶다.
"00년이요."
"00년? 그럼, 2016년에서 00년을 빼면...##살이잖아? 마흔 아닌데?"
"반올림하면 마흔이죠."
"아니 왜 미리 그렇게 말하고 다녀?"
"그렇게 앞으로 한 5년 우려먹으면 되죠, 뭐 중요한 거라고요."
내 이 불손한 태도에도 그녀의 질문은 이어졌다. 결혼은 했는지, 직장은 어딘지, 직업은 뭔지, 사는 동네는 어딘지, 무슨 아파트 사는지, 누구랑 사는지, 등등등등등. 한참 호구조사가 이어지는 동안 점점 굳어가는 내 표정을 본 것인지 못 본 것인지, 결국 그녀는 물을 것 다 묻고 나서야 시선을 맞은 편 남성 회원에게 돌려 친근하게 말을 걸기 시작했다. 내 보기에 이 남성이 그녀보다 조금 나이가 많아 보였지만 그렇다고 엄청난 손윗사람으로 보이지는 않았다. 하지만 그녀의 질문 속에 나이나 생년에 관한 것은 없었다. '나이를 파악당해야 하는 것'은 나뿐이었다.
올해 몇 살인지, 언제 태어났는지를 말하는 것이 엄청난 에너지를 요구하지는 않는다. 어떤 부연 설명을 할 필요도, 굳이 숨길 필요도 없는, 너무나 자명한 숫자로 된 정보일 뿐이니까. 나잇값 못한다고 느낄 때 빼고는 내 나이가 그렇게 부끄러운 적도 없다. 하지만 점점 이런 류의 질문이 피곤하게 느껴진다. 결국 그나 그녀들이 알고자 하는 것은 '내 나이가 몇인지'라기 보다는 '내가 너를 좀 편하게 불러도 되는지'일 터. 그런데 세상에 공짜 '편함'은 없다. 그 그림자에 생겨나는 '불편함'은 하대를 당하는 이의 몫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