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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소설]八日目の蝉(8일째 매미)
    보고 듣고 읽은 것들/책 2018. 10. 21. 01:24

    어제 다 읽었다.
    매일 조금씩 읽느라 2주나 걸렸지만
    마음 먹고 자리 잡고 앉아 읽었으면 비교적 금방 읽었을 분량이다.
    내연남의 아이를 유괴, 도주극을 벌이다가 붙잡힌 한 여성의 실화를 바탕으로 한 소설로
    일본에서 동명의 영화로도 만들어졌다.
    작가는 '화차', '종이달' 등으로 국내에도 어느 정도 인지도가 있는 가쿠타 미쓰요.
    그의 소설을 책으로 읽은 건 처음인데
    왠지 이 한 작품만으로도 다른 작품들의 분위기가 어렴풋이 짐작이 간다.
    내용이야 다 다르겠지만, '궁지에 내몰리는 여성이 어떤 식으로 세상에서 벗어나기 위해 발버둥치는지'는
    작가의 주된 관심사인 듯하다.

    소설의 표면적 구성만 보면 1장은 주인공 여성 기와코가 직장 동료와 불륜에 빠지게 되고
    임신중절 후유증으로 자신의 아이를 갖지 못하게 된 상태에서 불륜남의 아내에게 괴롭힘(?)을 받다가 아이를 몰래 유괴해 키우다가 붙잡힌다, 로 되어 있다.
    2장에서는 유괴된 여자아이(가오루)가 성년이 되어 자기 정체성 등에서 심적 갈등을 겪다가 어린 시절의 친구를 만나 마음을 열고 자신을 유괴한 여자(즉, 기와코)가 살고 있을지도 모르는 곳으로 향하는 것으로 끝난다.

    그런데 이 소설에는 이런 전개 외에도 상위 구도? 틀? 같은 게 있는 것 같다는 생각이 읽는 내내 들었다.
    주인공 기와코가 가오루를 유괴해 도주 생활을 하는 곳곳에서
    비교적 따스한 보살핌을 받는 부분에서 그런 느낌이 들기 시작한다.
    이때 음으로 양으로 도움을 주는 이들은 모두가 '여성'이다.
    기와코의 학창시절 친구 야스에를 시작으로
    철거촌 아주머니 토키코가 그랬고
    엔젤홈이라는 정체 불명의 단체(사이비 종교 단체 비스무리)는 아예 여성 입소자만 받는 아마조네스 같은 곳이다.
    이곳에서 만난 동료 입소자 쿠미가 알려줘 찾아간 쇼도지마의 소바집 주인 아주머니 역시 기와코와 아이를 따뜻하게 보살펴 준다.
    그 전에 머무르며 일한 러브호텔의 종업원들도 대체로 호의적이다.
    기와코가 경찰에 붙잡히기 전까지
    '누군가가 우리를 지켜주고 있다'는 느낌을 받는 것도 무리가 아닐 정도로.
    반면 이 소설에는 주연급 인물 중에 제대로 된 남자는 한 명도 등장하지 않는다.
    하나같이 무책임하고 우유부단한 모습으로 '관계를 겉돌' 뿐.
    물론 현실 속 모든 남성이 그럴 리는 없다.
    그러니 책 뒤에서 남성 해설가가 살짝 볼멘소리를 할 만도 하다. ㅎ
    아무튼 여성들이 극단적인 상황에서 안식을 얻는 곳, 그곳의 사람들을 '여성'에 한정시킨 것은 작가가 의도한 장치인 걸까, 하는 생각이 든다.

    그런데 여성들만의 세상에서 그녀들이 안전히 보호받은 모습에서는 묘한 안도감이 느껴지면서도
    (기와코의 행동을 전부 이해하는 것은 아니다.
    그저 상황에 연민을 느끼게 되는 부분이 있다)
    여성이 오직 아이를 통해서만 하나의 존재로서 충만함과 마음의 안정을 느끼고 구원받을 수 있는 존재로 그려진 것 같아
    그 점은 아쉬웠다.
    (기와코뿐 아니라 가오루 역시)
    치구사처럼 아이와 무관한 인물도 있지만 예외적으로 보인다.

    마지막을 향해 읽어나갈 때 쯤
    기와코와 가오루가 다시 만날 수 있을지 자못 궁금해지기 시작하는데
    개인적으로 마음에 드는 결말이었다.
    비현실적인 결말도 아니면서
    너무 허무하게 끝나지도 않는.

    이런 류의 소설이 대개 그렇듯
    현실 속 가해 여성과 아이는 어떻게 되었을까,
    하는 생각도 든다.
    그녀들도 기와코와 가오루처럼
    8일째 매미가 되어
    '눈 감아버리고 싶을 정도로 끔찍하기만 하지는 않은, 그런 풍경'을 결국은 보게 되었을까.
    부디 그랬기를, 가만히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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