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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my 올해의 책 No.1 (上)보고 듣고 읽은 것들/책 2019. 1. 9. 19:07
뒤늦은 감은 있지만 더 늦기 전에 올린다.
2018년 my 올해의 책 No.1!
『できそこないの男たち』(한국어 제목 : 모자란 남자들)!!!
'올해의'라고 적었지만 사실 2018년에 출간된 책은 아니다. 일본에서는 10년 전인 2008년, 한국에서는 2009년 출간됐다.
내 '올해의 책' 기준은 출간 연도와는 상관 없이 철저히 내가 읽은 시기를 기준으로 한다.
즉 이 책은 내가 작년에 읽은 책 중 가장 재미있는 책이었다.
제목만 보면 페미니즘 책일 것 같기도 하고 소설 같기도 하지만 생물학 에세이에 가깝다.
저자인 후쿠오카 신이치는 일본의 분자생물학자로,
이 책에서 그는 예리한 과학자의 시선으로 '성(性)'의 미스터리에 도전한다.
구체적으로는 남성화 결정 유전자(남성을 남성이게 하는 유전자)나 성염색체를 발견하기까지의 과학자들의 고군분투,
Y염색체의 여정, 성별(남성)의 존재 의의 같은 이야기가 흥미진진하게 펼쳐진다.
저자의 전작이자 대표작인 『動的平衡』(동적평형)과 『生物と無生物のあいだ』(생물과 무생물 사이)를 푹 빠져 읽었기에
이 책에도 어느 정도 기대는 하고 있었지만 다 읽고 나니 어떤 면에서 위 두 권보다 더 깊은 통찰력이 느껴지기도 한다.
아마도 '성', '성별'에 관한 내 각별한 관심이 반영된 결과리라.
시작은 흡사 추리 소설의 도입부 같다.
1989년 여름, 미국 콜로라도주 록키산맥의 한 고급 휴양지.
이 곳에 모여있는 한 무리의 사람들은-어쩐지 어울리지 않게도-과학자들이다.
연단에는 모두가 주목하는 신예 연구자 데이빗 페이지가 올라 야심찬 얼굴로 연구 내용을 발표하고 있었다.
내용인즉슨,
'남성을 남성이게 하는 유전자를 밝혀냈다'는 것이었다. 유전자의 이름은 ZFY(Zinc Finger Y).
손가락(finger)처럼 생기고 그 손가락 모양 사이에 아연(Zinc) 이온을 낀 채 Y염색체 문자열 위에 존재하여 ZFY라 불리는 이 유전자가
자기 아래, 또 그 아래에 위치한 DNA를 폭포에서 물떨어지듯 차례로 자극하면서 남성의 여러 성징이 나타나게 된다는 가설이었다.
가설에 따르면 ZFY 유전자가 없으면 남성은 만들어지지 않으며, 생명의 기본형인 여성으로 발달이 진행된다.
페이지는 성염색체 돌연변이가 일어난 XX male(XX 염색체를 갖고 있지만 외형은 남성인 사람)에게서 ZFY 유전자를 발견하고는이 유전자야말로 남성을 남성이게 하는 유전자, 곧 남성화 결정 유전자임에 틀림없다고 확신했다.
유전자형이 XX로 여성이어도 그 사이에 ZFY 유전자가 돌연변이로 끼어들어감으로써 남성의 외형을 만들어냈다고 본 것이다.
그러나 승리의 여신이 최종적으로 손을 들어준 쪽은 얄궂게도 페이지가 아닌 그의 경쟁자 굿펠로우박사의 연구팀이었다.
Y염색체의 문자열에서 ZFY 유전자보다 조금 더 뒤쪽에 있는 SRY 유전자가 진짜배기 남성화 결정 유전자였던 것.
페이지의 경우, 우연히 자신이 연구한 사례에 ZFY 유전자가 모두 포함되어 있었다는 점만 믿고 직관적으로 판단한 것이 패착이었다.
이 부분은 내용 전개가 추리소설처럼 다이나믹해 재미있는데, 사실 메시지 자체는 퍽 단순하다.
ZFY가 됐든 SRY가 됐든 '남성화 결정 유전자'라는 것이 존재하며 이것이 없으면 여성이 된다는 것.
반면 여성에게는 '무언가가 없으면 다른 성이 되는 현상'이 일어나지 않는다.
여성은 그냥 여성이다. 아마도 태초부터, 지금까지.
즉 생명의 기본형은 여성이며, 남성은 거기에 옵션을 추가해 변형시킨 주문 제작 상품, 좀 박하게 말하면 잉여로운 존재라는 것.
책 띠지에도 적혀 있다시피, '(아담에서 이브를 만든 게 아니라) 이브가 아담을 만들었다'는 것이다.
이런 내용은 전에 요네하라 마리의 책 『愛の法則』(차이와 사이)에서도 읽은 적이 있지만, 그는 과학자가 아니었고 그 책도 과학책은 아니었기에
과학적으로 검증된 사실이 아닌, 다분히 요네하라의 추측이 섞인 유니크한 주장 정도로만 여기고 넘어갔다.
또 그 주장에서 일정 정도 영향을 받아 이후 '부가적인 존재로서의 남성'을 의식하게 되긴 했어도,
그렇다고 여성이 인류의, 혹은 생명체의 기본형이라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기본형이 있다고 한다면 아마도 여성과 남성이 함께 존재하는 양성구유, 혹은 무성의 모습이어야 공평하고(!) 이치에 맞을 것 같았다.
그런데 이 책에 묘사된 '여성이 기본형'이라는 주장의 근거는 그런 당위나 사견을 말 그대로 '일축'하고 있었다.
수정 후 7주 이후의 태아가 각자 부여받은 염색체에 따라 성기를 만들어가는 과정에 관한 묘사가 그것이다.
인간의 기본형이 지금의 여성과 남성의 정확한 중간 지점에 있었다면
태아는 발생 초기에 두 가지 성기를 모두 갖고 있거나 성기 자체가 없는, 양성, 중성, 혹은 무성 상태이다가
일정 기간이 지나(책에 따르면 수정 7주 후) 중성상태에서 벗어나면서 여아는 여성, 남아는 남성의 성기를 '각각' 만들어가야 할 것이다.
그런데 실제 우리 몸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은 '시작부터' 많이 다르다.
처음부터 여아와 남아 모두 여성의 성기만 갖고 있다.
이 상태에서 여아는 그냥 왔던 길을 계속 가고, 남아만 '남성'의 성기를 만들기 시작한다.
그러기 위해서 남아는 이미 만들어져 있는 여성 성기를 '메워야' 한다.
그리고 실제 그렇게 된다.
남성의 회음부 중앙에는 남성기에서 귀두 밑까지 이어지는 약간 튀어나온 선이 존재하는데
이것이 바로 태아 시절 여성 상태로 벌어져 있던 성기가 수정 7주 이후 봉합되면서 생기는 선이라고 한다.
(이 부분을 한창 읽고 있을 무렵, 주변에 남자만 보였다 하면 자꾸만 그들에게도 여성 성기가 있었다는 사실이 떠오르며
그대로 잘 자랐으면 어떤 여성이 되었을까 하는 상상에서 자유로울 수가 없었다.
'본 눈'도 사고 싶고 '안 본 눈'도 사고 싶은, 즐거운 건지 불쾌한 건지 모를 이상야릇한 경험들;;;)
물론 이런 내용은 저자가 최초로 발견한 것도 아니며 이미 널리 알려진 사실인 모양이지만
나는 이 책으로 처음 깨달았기에 무척 흥미로웠고 놀라웠다.
인류의 진화 과정이 새로운 인간이 태어날 때마다 엄마 뱃속에서 매번 축약본으로 재방송되고 있다는 사실이 흥미로웠고
그것이 상징하는 바, 즉 여성이 '일개 성'이 아닌 그냥 생명체 자체, 즉 성(性)이 아니라 생(生)이라는 점은 놀라웠다.
이 땅에서 한 사람의 여성으로 살아오며 내가 느끼고 체험한 바, 여성은 사회적으로 거의 늘 곁가지적인 존재였다.
태어날 때부터 나는 동성 부모의 성을 물려받지 못했고, 그녀도, 그녀의 엄마도 그랬다.
그러나 나와 달리 사촌오빠는 동성 부모인 아빠의 성을 물려받을 수 있었고, 그 아빠도, 그 아빠의 아빠도 그랬다.
내 나라가 내게 매긴 일련번호는 '2'로 시작했고, 내 외할머니도 할머니도 엄마도 이모도 고모도 언니도 동성 친구들도 모두 그러했다.
그러나 내 아빠와 할아버지와 외할아버지와 사촌오빠와 이종남동생과 남자친구는 '1'로 시작되는 번호를 갖고 있다.
여성과 남성을 함께 칭할 일이 있을 때는 보통 남성이 먼저 왔다(에미애비, 암수, 연놈처럼 비하와 멸시의 의미가 있을 때는 예외다).
영어로 인간을 뜻하는 명사는 man, 혹은 male 이었고, 여성은 거기에 wo-나 fe-를 붙여 칭해야 했다.
한국어와 일본어에서 3인칭 여성을 뜻하는 '그녀', '彼女'는 남성 3인칭 대명사인 '그'에 굳이 '여성'임을 알리는 딱지를 덧붙여 만든 말이다.
온갖 증명 서류를 떼거나 인증 작업을 해야 할 때는 기본적으로 늘 '남성'으로 체크되어 있는 성별을 반드시 여성으로 바꿔야 했다.
한국의 신문 기사에 등장하는 인물의 신상 정보는 여성일 경우에만 '여(女)'라는 성별이 '부가' 표기된다.
비교적 가시적이고 커다란 부분에서 일상의 보이지 않는 부분에 이르기까지
한쪽 성별의 사람들만이 자신의 성별을 이렇게까지 집요하고도 일관되게 제시하며 살아야 한다는 것은 단순히 중립적인 '성별 인증'을 의미하지 않는다.
내 정체성을 끊임없이 증명해야 한다는 것은, 내가 살고 있는 이 세상이 기실 나라는 존재를 기본적으로 상정하고 만들어지지 않았음을 의미한다.
그런 상태에 지속적으로 노출되면 종종 '남의 집에 방 한칸 얻어 살고 있는 듯한 느낌'을 받게 될 때가 있다.
부가적인 존재란 왕왕 주변적인 존재가 된다.
그런데,
생물학적으로는 그렇지 않다고...?!
여성이 기본형이고 남성은 거기서 뻗어나온 곁가지라고...?
그러고나자 비로소 눈에 띈다. 수유를 할 일이 없는 남성에게 왜 젖꼭지가 남아있는지.
회음부까지 갈 필요도 없었군. 등잔 밑이 어두웠다.
여기까지가 책의 전반에 해당한다.
후반에서 저자는 이러한 생물학적 사실에서 한발 나아가 '의미'를 추구한다.
남성이라는 '생물학적' 곁가지는 그렇다면 왜 만들어진 것일까? 라는 질문이 그 출발점이다.
그런데 배가 고프다 했더니 벌써 7시...
이제 그만 집에 가야 할 시간이라 오늘은 여기까지.
후반부에 관한 내용은 내일 적어 완성하기로 한다.
I'll be back tomorrow.