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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의 인상깊은 대목골판지 2006. 5. 13. 22:41
1964년 겨울을 서울에서 지냈던 사람이라면 누구나 알 수 있겠지만,
밤이 되면 거리에 나타나는 선술집-오뎅과 군참새와 세 가지 종류의 술 등을 팔고 있고,
얼어붙은 거리를 휩쓸며 부는 차가운 바람이 펄럭거리게 하는 포장을 들치고
안으로 들어서게 되어 있고,
그 안에 들어서면 카바이드 불의 길쭉한 불꽃이 바람에 흔들리고 있고,
염색한 군용(軍用) 잠바를 입고 있는 중년사내가
술을 따르고 안주를 구워주고 있는 그러한 선술집에서,
그날 밤,
우리 세 사람은 우연히 만났다.....
-김승옥, <서울 1964년 겨울> 첫부분
밤이 서서히 들어차기 시작했다. 산 속에서는, 어둠은 바닥으로 바닥으로 첩첩이 쌓여 올라온다.
어느 틈엔가 복사뼈를 덮고 무릎을 덮고 문득 가슴팍까지 차오른 것을 깨닫는다.
어둠의 물결은 거기에서 멈추지 않는다.
얼굴을 삼키고, 머리 위로 아득하게 몇 겹이고 차곡차곡 차올라 산을 마시고,
지는 저녁놀을 마시고, 이윽고 하늘까지 마신다.
죽은 물고기가 깊은 바다 밑에서 수면을 아득히 올려다보듯이,
그 작은 비늘들이 이제 달빛을 받아 빛나지 못하듯이,
그렇게 이 세계도 어둠과 함께 깊은 나락으로 나락으로......
-히라노 게이치로 지음, 양윤옥 옮김, <달> 中
소설은 즐겨 읽는 편이 아니지만
여지껏 읽어본 소설들에 등장하는묘사 중 가장 좋아하는 부분.
전자의 경우야 워낙 유명한 작품에 유명한 작가니 말할 나위도 없지만,
후자의 경우는 옮긴이의 역량도 작용한 것 같다.
어느 날 해질녘 산속에서 잠깐 길을 잃었을 때, 순식간에 시커먼
심연에 잠겨버리는발치를 보고 아연해 있을 때 이 부분이 떠올랐다.
산 속에서 어둠은 바닥으로 바닥으로 첩첩히 쌓여 올라온다...
그렇게 이 세계도 어둠과 함께 깊은 나락으로 나락으로....
이들 묘사가 훌륭한 이유는
단순히 한 상황을 눈앞에 보이듯 표현해내었기 때문이 아니라,
소설이 그려내고자 하는 분위기나 혹은 주제까지 암시하고 있기 때문은 아닐런지.
이런분위기는 영상화해서는 살려내기 힘들 것 같다.
그런 것은 아직까지 활자의 몫이다.
좀 뜬금없긴 한데
아주 오래 전....고등학생? 혹은 대학 신입생 무렵
날카로운 묘사가 인상적으로 느껴져 수첩에 적어놓았던 모양이다.
우연히눈에 띄어적어 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