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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수면제
    골판지 2008. 10. 14. 17:42

    요즘 도통 잠이 안 온다.
    작년 이맘때에도 전공구분시험의 압박 때문에 잠이 안 왔지만
    지금은 요인도 복합적이고
    또 시험 보려면 한달도 더 남았는데 벌써 이러니
    고문도 이런 고문이 없다.
    눈감은 채 세 시간이고 네 시간이고 시간이 흘러
    기어이 어슴프레 창밖이 밝아오는 것을 느낄 때면
    초조함을 넘어 분노?까지 느껴진다.
    시쳇말로 미치고 팔딱 뛸 노릇이다.
    덕분에 수업자료든 뭐든 완벽히 챙겨서 학교에 가는 날이 없다.
    늘 무언가 집에 두고 오고 그나마 제대로 안 보고
    수업 시간에 부스에 들어가면 뭔가 홀린 사람처럼 버벅거리다 나오기 일쑤다.
    다른 사람들은 다 들은 내용이라는데 나만 늘 처음 듣곤 한다.
    그러면 점점 자학하고..
    집에 오면 또 여러가지 생각에(하고 싶지는 않지만) 잠못드는
    악순환의 연속.
    자기 전에 약간 술을 마셔보기도 하고
    먹으면 졸음이 온다는 각종 음식들을 먹어보기도 했지만
    백약이 무효했다.

    그래서 진짜 약을 사 봤다.
    약국에 들어가자마자 '수면제 주세요' 했더니
    아저씨가 약간 의아스러운듯한 표정으로 되물으신다.
    "수면제? 잠이 안 오나?"
    '그럼 잠이 안 오니 수면제 찾지 밥맛없어 수면제 달라는 사람도 있나..'
    속으로 한 말이긴 하지만 며칠 잠을 못 자니 성격도 더 까칠해진 것 같다.
    아무튼
    양약과 한방생약이 있다기에
    한약으로 사와 일단 먹었다.
    약을 먹으면서 설명서를 보니
    신경안정제란다.
    초조하고 불안한 신경을 잠재우고 편안한 수면을 유도하는...이라고 써 있다.
    신경안정제라면 전에도 한번 먹어본 적이 있다.
    고등학교 시절.
    나름대로 사는 것이 힘들어 부모님을 졸라
    신경정신과에 가서 치료받고 타서 먹던 약이다.
    큰 효과는 보지 못했던 것 같고
    다만 가서 받는 치료라곤 의사가 내 얘기를 들으며 고개나 주억거리는 것이 다인데
    병원비가 생각보다 비싸서 오래 못 다녔다.
    불안 초조 이런 것이 몸에 두드러지게 증상이 나타나지도 않다보니
    집에 눈치도 보이고...

    그런데 지금은
    당시 내가 무엇때문에 신경정신과에 갔는지는 기억나지만
    어느 정도 힘들었는지는 잘 기억이 안 난다.
    아마 당시 내 고통이
    물론 나를 무척 힘들게 했고(대학에 가서까지도 한동안 이어졌던 것 같다)
    결국 모든 포털사이트의 내 아이디를
    lethe..그리스신화에 나오는 망각의 강..로 짓게끔 만들었지만
    평생 남을 트라우마 정도는 아니었던 게 분명하다.

    지금의 감정소모도
    아마 학교를 떠나고 새로운 일을 하게 된다면
    딱 그만큼 줄어들테고, 그만큼 잊어가겠지.
    하지만 학교와 공부가 원인이 아닌 다른 부분에 대해서는
    어떻게 될지 나도 모르겠다.
    희망도 있고 불안도 있다.
    적어도 지금 이 상태는 아니기를. 오래가지 않기를 바랄뿐이다.
    적어도
    이번달 안에 수면제 한통을 다 비우는 일이 없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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