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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스쿠니 신사참배에 대한 아사히 신문의 논설골판지 2005. 10. 18. 13:39
아사히 신문 2005년 10월 18일자 사설(천성인어)
어제 고이즈미 수상이 예대제(정기적으로 열리는 신사의 제례)가 열리고 있는 야스쿠니 신사를 참배한다는 속보를 들었을 때, 전처럼 예복을 입고 참배하는 모습을 상상했다. 하지만 실제로는 양복차림이었다. 순간 아차 싶었다.
방명록에도 ‘내각총리대신 고이즈미 준이치로’라고 적지 않고, 본전에도 오르지 않은 채, 다만 주머니에서 동전을 꺼내 예를 갖출 뿐이었다. 예전과 같은 참배는 ‘공무(公務)’라고 한 위헌판결을 의식한 것인지도 모른다. 그러나 곧 의구심이 들었다.
차림새는 단출했으나, 현역 수상의 참배임에는 틀림없다. 닌자의 술법 중에 물로써 몸을 숨기는 것을 수둔(水遁)의 술(術), 불로써 몸을 숨기는 것을 화둔(火遁)의 술이라 한다. 그렇다면 어제의 방식은 장둔(装遁), 즉 옷차림의 술이라 할 만하다.
작가 야스오카 쇼타로(安岡章太郎)가 다니던 중학교는 야스쿠니 신사 옆에 있었다. 봄가을 제례기간이 되면 신사 경내에는 각양각색의 천막이 줄지어 들어섰고 서커스단도 찾아들었다.
텐트 그늘에 갈비뼈가 앙상한 늙은 말이 묶여 있었다. 그런데 애처로워보이던 그 말이, 일단 무대에 오르고 나자 몰라보게 팔팔해지더니 오랜 세월 갈고 닦아온 빼어난 곡예를 보여주는 것이었다.
-‘서커스단의 말’, 『야스오카 쇼타로집』, 이와나미 서점-
이에 빗대는 것은 아니지만, 어제 수상의 모습에서 통제되지 않는 폭주가 연상되었다. 이제까지 ‘고이즈미 극장’의 ‘고이즈미표 마술’은 많은 사람들을 끌어들여왔다. 그것은 수상 나름의 수법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위헌 판결까지도 가볍게 보아 넘기는 듯한 모습에 ‘고이즈미 서커스’의 아슬아슬함이 묻어난다. 고집스런 ‘신념’의 끝이 어디일지 걱정된다.
보수가 대다수인 일본 언론에서 드물게 전향적인 목소리를 내는 아사히 신문은중도좌파적 소신과 비교적 객관적이고 명쾌한 비판 논리로 유명하다. 일하다가 지루해서 들어가 봤더니 아니나 다를까, 어제의 수상 신사 참배를 간결하게 비틀고 있다. 짧아서 함 올려 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