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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과 일본, 그리고 책보고 듣고 읽은 것들/세상을 보는 한 컷 2015. 7. 1. 13:04
최근 주변인들로부터 받은 일서들.
심지어 한번도 만나본 적 없는 사람으로부터도 받았고
더 전에 받은 것까지 합치면 침대 머리맡이 수북하다.
과연 올해 안에 다 읽을 수 있을지 싶을 정도.
나란 사람 절대 다독가이기는커녕 난독증이 지병일 정도인데 밖에서 이미지메이킹을 잘 했나... --;; ㅋ어쨌든 이 책들의 공통점은 모두 문고판, 혹은 신서라는 것.
(신서라 하면 문고판보다 세로로 약간 길고 보통 두께도 얇은 책이 떠오르는데, 일본에서 주로 발달한 판형인듯하다. 내용면에서는 인문/사회/정치/예술 등의 분야, 형식적으로는 칼럼/대담/에세이 등 가볍게 읽을만한 글들이 주로 신서판으로 출간된다. 위 사진에서는 왼쪽 아래 책이 신서)
내용이나 디자인, 편집 등에서 보면 우리나라에도 좋은 책이 충분히 많지만 단 한가지 늘 아쉬운 점이 있다면 크기와 무게였다. 가만히 앉아 책 읽는 시간이 따로 있다기보다는 주로 어디 갈 때 전철 안에서 혹은 자기 전에 누워서 읽기 때문인데, 가방에 짐이 조금만 많아져도 어깨가 뻐근해지다보니 이젠 외출시 가방에 넣을 책으로 얇은 잡지나 문고판, 신서판 책 아니면 아예 손이 가지 않는다. 단순히 형태적인 요소만 보면 일본 책이 내겐 더 맞는 셈. 다만 문고판이나 신서에도 단점은 있으니, 책 크기가 작아지는 만큼 글자 크기도 작아져 '눈'의 입장에서 보면 오래 읽고 있기가 역시 쉽지만은 않다.그런데 두 나라의 책 크기의 차이가 비단 요즘 이야기만은 아닌 모양이다.
몇 달 전 일본의 한 고문서 도서관 관장님과 함께 서울대 규장각 전시실을 둘러본 적이 있는데, 이 때 들은 이야기가 인상적이었다. (토씨 하나까지 정확히 기억하지는 못하지만 대략 다음과 같은 내용)
"조선시대 책들을 보면 압도되는 느낌을 받을 때가 있어요. 특히 왕실에서 간행한 책들의 사이즈가 정말 크고 책의 내용이나 용도 별로 표지 종이나 제본에 사용하는 끈의 색이 다 다르거든요. 안에 기록된 내용들을 봐도 가령 왕실 의궤 등에 관한 그림을 보면 그 많은 사람들이 한명 한명 다 그려져 있고 색칠까지 돼 있죠. 예를 들어 깃발을 들고 있는 사람이 있다 하면 조선에서는 그 모습을 전부 그림으로 남겼습니다. 일본 같은 경우 깃발 기(旗)라는 한자로만 표기하는 식이예요. 또 조선의 고문서나 고서에는 이것을 누가 하사한다는 것을 나타내는 도장이 큼지막하게 찍혀있는 경우가 많아요."
'책이 커봤자 책이지 뭘 압도당할 것까지야?' 하며 듣고있는데 마침 정말 압도될만한 크기의 책이 눈앞에 나타났다. 펼쳤을 때 가로 세로 모두 내 책상 반은 족히 넘을 만한 사이즈의 고서가 진열대 안쪽에서 위용을 자랑하고 있었던 것! 규장각 홈페이지에서 확인해보니 이 책의 이름은 <대구장적>. 조선시대 호구대장이라 하니 클만도 하다. 왕실 의궤 같은 경우 역시, 유교가 국교이자 국시였던 나라에서 그 형식이 의미 못지 않게 중요하므로 동원된 사람 한 명 한 명까지 생생하고 구체적으로 묘사되는 것도 이해가 간다. 그런데 이런 국가적인 사업 차원에서 편찬한 책들 말고도 조선시대의 책들이 일본의 해당 시기 책들보다 일반적으로 크기는 컸던 것 같다. 이유는 뭘까?사실 두 나라의 '스케일' 차이를 느낀 것은 비단 책에 대해서 이야기할 때만은 아니었다. 또 크기가 크다고 그 안에 든 내용까지 깊은 것은 아니며, 작다고 다 쓰임새가 있다고도 할 수 없다. 다만 한 가지 확실히 흥미로운 것은 책의 형태 하나에도 한국과 일본의 미적 기준이나 실용성에 대한 관점의 차이가 상당히 뚜렷하게 드러난다는 점. 책의 역사, 그 중에서도 한일 두 나라의 책의 형태, 그 변천을 다루는 비교문화사적인 책이 나와도 재밌을듯. 단, 팔리진...않을 것이다...절대로...책이 크든 작든, 출판시장은 한일 모두 요즘 죽쑤고 있으니까...크흑 ㅜ_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