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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 1인당 가방끈 길이 평균으로는 단연 전세계 1위를 차지할 나라에 태어난 덕에
나도 짧지 않은 기간 동안 학교라는 곳에 다녔지만
그래도 배움이 모자란 탓인지
더 많이 배운 분들의 높은 뜻을 이해하지 못할 때가 많다.
특히
대체 왜 그렇게 한자 표기에 목을 매는지?
나도 한글 전용론자는 아니라 한자를 의무교육으로 어느 정도 배워야 한다고 생각하지만
그건 좋든 싫든 오래 전부터 한자가 우리말 표현 수단의 일부로 사용되어 왔고
우리말 표현을 보완하며 그 이해를 더 넓혀주기도 하고
지금도 여전히 동아시아 한자문화권인 한국에 살면서
한자를 모른다는 것이 얼마나 큰 문화적 손실, 역사적 단절을 뜻하는지 알기 때문일 뿐.
한글만 써도 충분히 알만한 부분에서 여기저기 괄호 치고 그 안에 들어앉은 한자를 볼 때면
이것이 과연 이해를 넓혀주는지, 오히려 더 막는 것은 아닌지
묻고 싶은 경우가 적지 않다.
가령 '대만의 고궁박물원'이라고 할 때
'대만' 옆에 臺灣이라는 복잡한 한자가 달려있지 않아도
여기서 말하는 '대만'이 중화민국, 즉 Taiwan이지
농구만화 <슬램덩크>의 정대만을 뜻하는 게 아님을
보통의 한국인이면 알고도 남을 것.
그런데 왜! 왜? 꼭 '대만(臺灣)의 고궁박물원(故宮博物院)' 이런 식으로 써서
가독성을 떨어뜨려야 하는 걸까?
학술서도 아니고...
아니 학술서라면 더욱 더 그렇지!
학술서를 읽을만큼 교양 있고 학식 높으신 분들이면
그 정도 한자는 안 달아줘도 맥락상 무엇을 가리키는 것인지 다 구분할 뿐 아니라
아예 직접 쓰실 수도 있지 않을까?
번역하며 이런 부분에서 종종 일부 편집인들과 부딪힐 때가 있는데
주로 동양사, 동양 언어쪽을 전공하거나 오래 공부하신 분들이 그랬다.
(한 번은 만난 자리에서 '의사'의 '의(醫)'자를 써보라며 메모지를 주신 분도 있었음 ㅋ)
나도 학부 시절 역사를 전공했고 동양의 언어를 배웠지만
날라리 역사학도여서 그랬는지 ㅋ
당시 레포트 쓸 때 많이 참고하던 <한국사 시민강좌>라는 역사학계 정기간행물이
거의 대부분의 한자어를 한자 병기하다가 점점 한글 위주로 변해가는 것에 대한
일부 선배들의 저항(?)에 동조할 수 없었다.
그리고 요즘은 그렇게까지 옛날 방식을 고수하는 사람을 보기도 힘들었는데
얼마전...
...'강적'을 만났다.;;;;;;
책 앞 부분 저자 서문의 저자의 건강 상태가 묘사된 부분에서
책이 말하고자 하는 내용과 본질적 관계가 없는 '심장' '신장기능' 이런 단어들에까지
전부 시뻘겋게 한자가 병기된 교정지가 돌아왔다...숨이 턱턱;;;;;
정말 이렇게까지 해야하는 이유가 있을까 싶어 여쭤봤다. 굳이 필요하냐고.
그러자 '혼동을 막기 위해서'라는 답변을 보내주셨는데
정말이실까...
정말 혼동을 막고 싶으신 것인지,
heart 아닌 다른 어떤 의미의 '심장'이란 말을 우리가 그렇게 자주 쓰길래
혼동의 우려가 있다고 생각하신 건지,
정말 정말 궁금하다.
피곤해서 더 이상은 묻고 싶지도 않지만. 하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