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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회색분자의 흑백논리골판지 2016. 5. 4. 23:16
순백은 순결한 색일까?
모든 색은 채도가 높을 수록 순수한 색이라 할 수 있지만
흰색에는 채도가 없다.
순결하기는커녕 흰빛은 모든 빛이 모여서 생기는 빛이다.
다만 그 '하얌'이 우리 눈에 분해 불가능한 하나의 빛으로 보이는 것일뿐.
순백은 수 많은 빛을 끌어안고 있지만
그 사실을 끝끝내 함구한다.
흰 바탕에 검은 점 하나라도 튈라치면 '오점(汚點)이 남았다'고 한다.
점(點)에는 검을 흑(黑)자가 들어가 있다.
순백을 보며 순결하다기보다 새침하다는 느낌을 받는 것은 이 때문이다.
채도가 없기는 검은색도 마찬가지.
빛으로는 존재하지 않고 색으로만 존재하는 이 묘한 검은색도
모든 색을 끓어안고 있는데
다만 그 사실을 숨기지 않는다.
칠흑같은 밤하늘의 하얀 별빛을 보며 '오점'을 지적하는 사람은 없다.
흑색은 악함, 공포, 거짓을 연상시키지만
기실 어두울지언정 적어도 거짓말은 하지 않는,
그 어떤 색보다 정직한, 용기있는 색일지 모른다.
쪼개고 또 쪼개보면 그저 의미없는 파장의 조합에 불과한 어떤 이미지를 놓고
순결하네, 정직하네, 하는 것은 지극히 인간 중심적인 의미 부여일뿐이다.
그래도 사람을 하나의 색으로 표현하는 것이 가능하다면,
사람이 하나의 색일 수 있다면
차라리
검은색 내가 되고 싶다.
어차피
순결할 수 없고
그럴 필요도 없을 뿐더러
그러고 싶지도 않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