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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9년 my 올해의 책
    보고 듣고 읽은 것들/책 2020. 1. 3. 18:22

     

    '올해의'라고 했으니 2019년에 썼어야 하지만

    여느 때처럼 차일피일 미루다가 결국 2020년 1월 3일이 되고야 말았다.

    미룰 만큼 힘들고 대단한 작업도 아닌데;;;

     

    2019년에 읽은 가장 인상 깊은 책 best 10은 다음과 같다.

    (출간년도 기준이 아닌 내가 읽은 연도 기준)

     

    1. <ある男> 히라노 게이치로, 소설

      - 나를 나이게, 당신을 당신이게 하는 '단일'하고도 '고정불변'인 정체성이 존재할까? 그런 것 없어도 환대받을 수 있는 관계가 아마도 불가능하지는 않을 것이라는 믿음. 요즘처럼 '혐오'가 일상화한 시대와 사회에 꼭 필요한 소설이라 생각하지만, 아직 국내에는 번역 출간이 안 된 모양이다. 우리 모두가 생각하는 그 이유(한일 관계 경색, 일본 불매 운동) 외에 어떤 다른 이유가 있는 걸까? 복수의 출판 관계자에게 들은 이야기에 따르면 요즘 일본책은 '일본 까기' 관련된 내용 아니면 안 나간다고(=즉 안 만든다고) 한다. 이해가 안 가는 것은 아니다만 그 통에 이런 책까지 묻힌다면 아까운 일이잖아요. 징징징...차라리 저작권료 때문이기를. 

    2. <10퍼센트 인간> 앨러나 콜렌, 생명과학

      - 장내 미생물이 쥐락펴락하는 이 몸이, 정녕 내 몸이 맞습니까... 평상시 눈으로 볼 수 없는 우리 몸 속의 미시적 세계가 역동적으로 묘사되는 생명과학 분야 책은 언제나 흥미롭다. 개인적으로 뽑은 이 책의 압권은 자폐아의 강박적 행동을 조종하는 미생물의 생존 전략, 항생제라는 양날의 검, 장누수의 메커니즘, 그리고 출산시 엄마 몸 속에서 아이에게로 전해지는 최고의 선물인 유산균에 관한 부분. 책 다 읽고 수술한 후 약 처방받을 때 항생제 있는 것보고 '유산균도 같이 주세요' 할 수 있었던 것은 뜻밖의 수확.

    3. <우아하고 호쾌한 여자 축구> 김혼비, 에세이

      - 읽기 전 : 술 잘 마시고 축구에 미친 사람, 좋냐고? 음, 글쎄요....;;;

        읽은 후 : 나도 축구화 끈 한번 매 볼까...그런데 김혼비 소속팀이 어디였지...

    4. <동아시아, 해양과 대륙이 맞서다> 김시덕, 역사

      - 한반도의 지정학적 '특수성'은 처음부터 정해져 있던 게 아니며, 동아시아 해양 세력이 대륙과 맞붙으면서 형성된 것이라는 것이 저자의 시각. 그 기점인 임진왜란은 우리에게 수백 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고통과 치욕의 역사로 남아있는데, 중국대륙 역시 이로 인해 왕조가 교체되는 대변혁의 기로에 서게 된다. 이후 500년 동안 펼쳐지는 동아시아 해양vs대륙의 교류와 침략, 응전의 역사가 소용돌이치듯 펼쳐진다. 한국인 저자의 책인데 군데군데 일본 번역서를 읽는 느낌이 든다. 글이 어색하다는 뜻은 아니다. 오랜 기간 일본에서 연구한 저자의 경력이 영향을 미친 듯. 다만 그렇다고 '친일???'이라며 경계하기 전에, 우리에게 이런 시각도 있어야 한다는 생각이다. 대만 역사가 비교적 자세히 나와 있어선지 한국인 학자의 책으로는 드물게 대만에도 번역 출간됨. 

    5. <아내를 모자로 착각한 남자> 올리버 색스, 인문

      - '나=나의 뇌'는 아닐지라도, 뇌가 나를 나로 믿게 만드는 것은 맞겠지. 제아무리 강경한 무신론자일지라도, 우리는 모두 각자의 뇌느님을 믿는 경건한 신자일 수밖에 없다. 

    6. <심리치료의 비밀> 루이스 코졸리노, 심리학

      - 대학 심리학 수업 부교재. 학술적 개념 소개에 충실한 편이지만 저자 자신의 체험을 읽는 재미도 쏠쏠하다. 평생 모르고 살았던 저자 자신의 출생 당시의 고통을 명상으로 기억해내는 장면과 EMDR 기법으로 고통스러운 트라우마 기억을 완화시키는 부분이 인상적.

    7. <사당동 더하기 25> 조은, 사회학

      - 내가 보고 듣고 기억하는 비교적 부유하고 번화한 모습의 사당, 그 전에 거기 살던 이들의 모습. 80년대 후반 철거와 재개발이 진행되기 전 사당동 달동네에 살았던 한 할머니 가족의 삼대에 걸친 빈곤의 대물림을 통해 '가난이 구체적으로 어떤 식으로 삶을 속박하는지' 담담히 보여준다. 25년이라는 긴 연구 기간은 '가난이 얼마나 벗어나기 어려운지'를 말해주는 은유같기도 하다. 그렇게 길고 긴 관찰과 연구의 끝, 가난과 가난한 이들의 생활습관 중 무엇이 원인이고 무엇이 결과인지에 대해 저자가 내린 결론은 그래서 단호할 수 밖에 없다. 부록 CD에는 책이 출간되기 3년 전 먼저 완성된 다큐멘터리 영화 <사당동 더하기 22>가 수록돼 있다. 실명으로 등장하는 할머니네 가족의 말이 자막 없이 알아듣기 힘들 정도로 발음이 엉망이라 들으며 애먹었다. 그리고 그 이유가 바로 가난 때문임을 알고 생각이 복잡해졌다. 

    8. <해리 오거스트의 열다섯 번째 삶> 클레어노스, SF소설

      - '끊임없이 반복되는 환생의 고리를 끊어 이 모든 고통에서 벗어날 수 있기를' 불교나 힌두교 경전 내용이 아니다. 소설 속 크로노스 종족(죽고나서 다시 환생하며, 이를 스스로 의식하는 종족) 중 한 사람의 피맺힌 절규다. SF소설인만큼 퀀텀미러나 평행우주 등 현대과학의 흥미로운 개념들이 나오고 운명의 굴레에서 벗어나기 위해 폭주하는 '미치광이 과학자' 같은 단골 클리셰도 등장하지만, 어째 자꾸 고대 밀교 경전인 '티벳 사자의 서'가 떠오른다. 어쩌면 우리도 끝없이 윤회하는 크로노스 종족인지 모르잖아. 다만 기억력은 좀 많이 딸리는. 대략 310페이지까지만 읽으면 뒷부분 재미는 보장합니다. 

    9. <여행의 이유> 김영하, 에세이

      - 몇달 살기 하려고 짐 잔뜩 이고지고 간 해외 공항에서 비자 없다고 문전박대 당해 그날 바로 한국 강제 송환...이런 흑역사도 김영하라는 사람을 거치니 이런 글이 된다. 사진 한 장, 핫한 장소 소개 한 페이지 없는 '여행'서지만 역시 김영하 손을 거치니 2019년 베스트셀러 1위에도 당당히 등극하고. 그래서 이의 있냐고? 놉. 그럴 리가요.

    10. <펀홈> 앨리슨 벡델, 그래픽노블

      - 게이 아버지와 레즈비언 딸 사이에 흐르는 이 팽팽한 긴장감, 이 지적 교류의 수준은 다 무엇? 누군가에게는 전혀 가족적이지 않은 패밀리 스토리겠지만 들여다보면 우리가 보통 '가족적'이라 보는 '평범한' 가족 사이에도 얼마나 예리한 유리조각이 널려 있는지. 저자 앨리슨 벡델은 얼마전 인기를 끈 영화 <벌새>의 원작책에서 김보라 감독과 대담을 나누더니, 이번엔 엄마 얘기를 그린 또다른 그래픽노블도 출간됐다. <당신, 엄마 맞아?>라는 도발적인 제목으로. 믿고 사는 작가 또 늘었네...

     

    일부러 맞춰 추린 것도 아닌데 딱 열 권,

    그 중 여성 작가의 책이 절반인 다섯 권,

    한국인 저자의 책은 네 권이다. 

    1~4번을 빼면 사실 번호에 순위의 의미는 없다. 

    무료한 듯 힘겨웠던 2019년 한 해를 함께 해 준 모든 책들에게 고마움을 표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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