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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4.16, 안개 속 풍경
    골판지 2016. 4. 16. 18:44

     

    2년 전 오늘 나는 송도에 있었다.

    며칠 일이 있어 찾은 그곳에서 숙소를 찾지 못해 지인-친구의 친구-집에 신세를 지고 있었다.

    그 집은 주상복합아파트의 아주 고층에 있었는데

    지인 내외는 더없이 친절했지만 군식구인 나는 아무래도 불편한 마음에

    거실 제일 끄트머리에 자리잡은 드레스룸-큰 통유리 창이 있는 골방-에 짐을 풀었다.

     

    4월16일 아침,

    여느 날과 다름없이 눈을 떴다.

    그러나 그 뒤 눈앞에 펼쳐진 풍경은 지금도 잊을 수 없다.

    커튼을 밀치고 바라본 통유리창 너머에는,

    마치 밤새 누군가 지우개로 박박 지워놓기라도 한듯

    바로 맞은편 같은 높이의 아파트도, 교회 첨탑도 발치부터 머리꼭대기까지 몽땅 자취를 감추고 없는,

    기이할 정도로 완벽하게 뿌연 '無'의 공간이 펼쳐져 있었다. 마치 꿈처럼...

    잠시 넋을 놓고 서있다가 방밖에서 들리는 집주인의 말을 듣고서야

    내가 천공의 성에 있지 않음을 확인하고 풀렸던 다리에 다시 힘이 들어갔다.

     "오늘은 안개가 엄청 자욱하네~ 바깥이 완전 하얘~ "

    온통 하얗되 새하얗지는 않은 그 모습은 <설국>보다는 <무진기행> 속의 풍경이었다.

     

    "...아침에 잠자리에서 일어나서 밖으로 나오면, 밤 사이에 진주해온 적군들처럼 안개가 무진을 삥 둘러싸고 있는 것이었다. 무진을 둘러싸고 있는 산들도 안개에 의하여 보이지 않는 먼 곳으로 유배당해버리고 없었다. 안개는 마치 이승에 한이 있어서 매일밤 찾아오는 여귀가 뿜어내놓은 입김과 같았다..."

     

    안개라면 나도 처음 보는 것이 아닌데...오늘은 무슨 일일까? 바다 근처는 원래 이런가?

    일기예보나 뉴스를 볼까 하다가 시간이 없어 서둘러 채비를 하고 보이지 않는 길을 헤쳐 일터로 갔다.

     

    안개는 오전중에 사라졌지만 이튿날, 또 이튿날 새벽이 되자 어김없이 다시 나타났다.

    나는 그렇게 안개와 일에 유배된 상태로 낯선 곳에서 텔레비전도 인터넷도 거의 못보고 지내다가

    집에 오는 날 전철에서 핸드폰으로 한 고등학교 교감선생님의 안타까운 죽음을 접하고서야 알았다.

    송도에서 멀지 않은 인천항에서 출발한 배와 그 속에 있던 아이들이 그날 아침 어떤 끔찍한 일을 당했는지,

    왜 그 며칠동안 식당에서 마주친 아저씨들이 그렇게 아이들 수학여행 안 보내게 된 얘기를 하셨는지...

     

     

     

    2년이 흘렀다.

    오늘은 우리 동네 날씨도 을씨년스럽기 그지없다.

    요맘때면 이런 저런 일이 많아 준비할 것도 제법 되는데

    오늘따라 밖에서 들리는 바람소리, 빗줄기 소리에 신경이 곤두서

    책상 위를 뒹구는 자료는 눈에 들어오지 않고 그날의 안개낀 풍경만이 자꾸 떠오른다.

     

    그때나 지금이나 내가 아는 것은

    그날 새벽 인천항과 송도는 말그대로 한치 앞을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시계가 나빴고

    그 자욱한 안개 속에서도 배는 꾸역꾸역 출항했으며

    수많은 아이들이 차가운 4월의 바닷물 속에서 어른들의 손길을 기다리다가 영영 나오지 못했다는 것뿐,

    배가 왜 출발했고, 왜 갑자기 기울었으며, 

    대서양이나 태평양 한복판도 아닌 자국 '앞바다'에서 기울기 시작해

    비교적 구조요청 신고도 일찍 접수된 배가

    왜 온국민이 바라보는 가운데 몇 시간을 방치되어

    마치 우리가 아이들이 죽기를 넋놓고 기다리며 바라본 것과 같은 기가 막힌 상황이

    대체 왜 만들어졌는지,

    왜 선실에서 구조를 기다리던 아이들을 끝끝내 단 한 명도 못-혹은 '안'-구했는지,

    왜 엄청난 규모의 해경 구조대가 투입된 것처럼 방송이 떠들어대는 가운데

    정작 투입된 것은 대부분 민간잠수사뿐인지,

    대통령의 7시간의 행적은 왜 속시원히 공개되지 않는지,,,,

    모르는 것은 열 손가락으로 세어도 모자랄 정도로 많다.

     

    그렇게

    아무것도 모른다는 것.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는 것.

    무지의 장막과도 같은 그 숨막히는 안개가 아직도 내려앉아 있다는 것.

     

    안개가 걷히는 날이 올까.

     

    아직 눈앞은 희뿌옇지만

    그 날은 온다고,

    머지 않았다고 믿고 싶다.

    정신을 차려보니 말끔히 걷혀있던 송도의 안개처럼.

    그때까지는 세월호하면 안산도, 진도도 아닌 송도의 안개가 계속 떠오를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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