걷고 쓰고 그린 것들/터벅터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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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 박원순 서울시장 분향소를 다녀오며걷고 쓰고 그린 것들/터벅터벅 2020. 7. 11. 15:43
종각역 옆 스타벅스에 와 있다. 거의 정확히 1년 전, 개인적으로 답답한 일이 있어 기분 전환겸 서점 나들이 나왔다가 들렀던 곳이다. 건물 지하에는 종로책방(아름다운가게 중고서점)이 있고 1년 전에 거기서 책도 몇 권 샀다. 아름다운가게. 엊그제 유명을 달리 한 고 박원순 서울시장의 작품 중 하나다. 박원순 서울시장이라 하면 정치인, 관료 통틀어 능력과 인품 면에서 누구보다 신뢰했던 인물. 그런 그가 자살로 생을 마감했다. 성추행 의혹을 남긴 채로. 믿을 수 없고 믿고 싶지 않지만 어쩌면 믿어야 할지도 모르는 잔인한 현실을 되새기며 어딘가에서 소리죽여 울고 있을지 모르는 고소인(박시장의 전 비서)을 떠올리며 그럼에도 그가 남긴 발자취가 있다는 생각에 뿌연 마음을 안고 분향소에 다녀왔다. 시청역에서 내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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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업실에서_37] 머릿속으로는 손목을, 손으로는 사과를...그리다걷고 쓰고 그린 것들/터벅터벅 2020. 4. 16. 19:28
극심한 수면장애로 정신줄 놓고 산 지 대체 며칠, 몇달째인지 모르겠다. 이제 누구에게 털어놓기도 민망하고, 그렇게 혼자 끌어안다보니 자기혐오에까지 빠지게 만드는 불면증. 잘 참아왔다고 생각했는데 어제는 솔직히 많이 힘들었다. 남자친구의 작은 무배려가 미칠 것 같은 분노를 일으켰다. 사소하지만 끝내 고쳐지지 않는 무배려, 무자각... 불면으로 인한 극도의 불안감과 초조함에 분노까지 겹쳐 얼굴에는 종일토록 미소의 그림자도 비치지 않았다. 마음을 가다듬기 위해 산책을 나섰다. 투표를 마치고 천원샵에 들러 다육이와 싸구려 잡화를 멍때리고 구경하는데 저쪽에서 남자 노인이 한 명이 다가오더니 나와 자기밖에 없는 진열대 사이 공간을 지나갔다. 내 왼쪽 엉덩이를 치면서. 그냥 손을 흔들었을 뿐인데 우연히 내 몸에 닿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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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5(금) 종로 서점 나들이걷고 쓰고 그린 것들/터벅터벅 2019. 7. 10. 00:29
얼마전 일 때문에 멘붕 온 다음날 기분전환이나 할 겸 찾아간 종각역 영풍문고. 그간 인터넷서점 위시리스트에 올려놨던 책들을 하나씩 직접 살펴보며 혼자만의 책도락에 빠져있다 보니 점심을 먹고 집을 나섰는데도 어느새 배가 출출해지기 시작했다. 그래서 찾아간 곳이 '미정국수'. 오 년 전 이 근방 학원에서 잠시 학생들을 가르칠 때 이 집 아니면 '이요제면'이라는 일본식 우동집에서 끼니를 때우곤 했는데... 우동집은 사라졌지만 멸치국수집은 살아남았다. 백종원표 프랜차이즈의 힘인 걸까. 어찌 됐든 혼자 괜히 반가운 마음. 냉국수를 한 사발 드링킹하고 스벅에서 따뜻한 라떼 한 잔으로 뱃속의 냉기를 달랜 후 다시 서점으로 복귀하려는데 스벅 건물 지하 1층으로 통하는 계단 앞에 입간판 하나가 보였다. '종로떡방-아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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걷기 수행중 in 오사카걷고 쓰고 그린 것들/터벅터벅 2018. 11. 9. 20:48
유타니를 만나기 위해 오사카에 와 있다. 진짜 만나는 건 내일이고 오늘은 일단 혼자. 비행기표, 호텔, 환전, 현지 교통패스, 인터넷 확보까지 만반의 준비를 하고 이륙 시간보다 무려 3시간 일찍 도착해 출국 수속도 20분만에 초고속으로 마쳤는데 결과적으로 오늘 비행기 못 탈 뻔 했다. 보딩 패스에 적힌 좌석 번호를 게이트 번호로 착각해서 엉뚱한 곳에 앉아있는 바람에... 탑승 시각이 되어도 아무런 안내 방송이 없어 '이상하다' 하며 보딩 패스를 보니 내가 가야할 곳은 101번 게이트. 현재 있는 곳은 18번 게이트. 다행히 캐리어 없이 배낭만 맨 상태라 바로 전력 질주 시작. 하지만 인천공항은 너무 넓은 거다... 무빙워크를 달리고...달리고... 에스컬레이터와 계단을 내려가서... 청사 연결용 버스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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응답하라 1988 @응암동걷고 쓰고 그린 것들/터벅터벅 2018. 10. 3. 18:25
개천절. 남친과 소원하고 갑자기 누군가를 불러내 만날 생각도 없어 무얼할까 생각하다가 문득 응암동에 가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초등학교, 아니 국민학교 4학년초까지 살던 곳. 전철은 3호선 녹번역. 2000년 초 무악재 화실 다닐 때 어느날 한번 다녀가고 거의 20년만이다. 지금까지의 삶에서 가장 오래된 기억들이 만들어진 곳이니 내 고향이라 해도 되겠다. 가는 내내 전철에서는 건축가 유현준의 '어디서 살 것인가'를 읽었다. 책 초반부에서 저자는 이 나라의 학교 건물이 얼마나 교도소와 비슷한지 시종 탄식하는데 어디 학교뿐이랴, 급속한 도시화 산업화 속에 전국을 뒤덮은 건물이. 응암동은 최근까지만 해도 서울시에서도 손꼽히는 슬럼 지역, 낙후된 동네의 대명사였다. 요즘은 재개발 건축이 한창이라 들었는데 과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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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프로불편걷고 쓰고 그린 것들/터벅터벅 2017. 8. 7. 17:30
'호기심에 저지른 일' 나는 이 말이 싫다. 이 말은 대개 남자아이가 여자아이에게 어떤 의도나 목적이 다분한 행동을 했을 때, 가령 치마를 들추거나 브래지어끈을 건드리거나 했을 때 그 성적 충동을 돌려서 표현할 때 쓰이는데 당하는 사람 입장에서 굉장히 불쾌하고 수치스러운 일임에도 불구하고 가해자나 그 주변인의 '호기심에 한 일'이라는 한 마디에 피해자의 당황스러움과 분노는 향할 곳을 잃기 때문이다. '호기심', 그러니까 사물과 사람, 주변 세계에 대한 철없는 궁금증 때문에 그랬다는데, 거기서 뭘 얼마나 더 화내고 추궁할 수 있을까. (반대로 여자아이가 호기심에 남자아이의 성적 수치심을 불러일으키는 행동을 했다 해도 마찬가지다. 다만 이런 경우를 본 기억이 거의 없을 뿐) 비약일지는 모르지만, 이런 식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