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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골판지 2004. 6. 23. 22:19

    전쟁이란 것이 다 그렇지만,

    가장 추악하고 아무런 명분도 없는 이 전쟁에

    암묵적 동의를 표한 우리에게돌아온 것은..

    테러리즘에 굴하지 않았다는 찬사도 아니고

    우방(?)과의 약속을 지킨데서 오는 알량한 경제적이득도 아닌

    자국민의 참혹한 죽음과

    그 과정에서 아무 것도 할 수 없었던 철저한 소외감이었다.

    '협상이 잘 진행되고 있고, 언론에서도 생환가능성이 높다고 하고 있으니..'하며

    마음을 한껏 놓아버린 우리 국민에게 날아든 이 날벼락같은 소식은,

    공포와 절망으로 일그러진 채 울부짖던 그의 생전 모습과 함께,

    아주 오랫동안 지워지지 않는트라우마로 남을 것 같다.

    단지 한 사람이 잔인하게 살해되었다는 이유에서만이 아니라,

    우리가 얼마나 안일하고 기회주의적인지를,

    아직도 얼마나 무심하고 무지하며 무력한지를,

    너무나 너무나

    뼈저리게 느끼게 해주었기 때문이다..

    일을 하러 가는데 여느날과 똑같았다.

    역의안내방송과 바깥의 풍경들과전철안의 부산함. 핸드폰 소리, 물건 파는 소리.

    그의 생존을 거의 확신하는 가판대 조간신문들의 머릿기사 타이틀과

    그의 죽음을 알리는 뉴스 자막이 어울리지 않게 오버랩되듯이,

    여느 때와 같은 이 일상이 이상하게도 새삼스럽고 낯설다.

    이 아무렇지도 않은 평화의 세계속에 중독된 나는

    살아있는 지옥이 지구 저편에 있음을 알면서도 잊은 척 하고

    무슨 일이 있을 때만 내 반대편을 손가락질하며 욕했으며

    파병에 찬성하지 않았음을 내 양심의 알량한 방패로 삼았다.

    아마 앞으로도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그런데 오늘만큼은,

    나를 둘러싼 이 평화로운 일상의 장막이 일순이나마 걷혀진 오늘만큼은.

    눈을 감아도 보이고 귀를 막아도 들리고 등을 돌려도 느껴지는

    서늘한 '어떤 것' 때문에

    조금 괴롭다.

    우리는 참수방조죄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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