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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先祖がえり_모자를 벗고 싶은 고무나무
    보고 듣고 읽은 것들/세상을 보는 한 컷 2017. 9. 8. 23:59

    집에서 키우는 벵갈고무나무 이파리 색이
    점점 어두워지고 얼룩무늬도 점점 흐려져서
    아예 아무 무늬도 없는 잎이 늘어나고 있다.

    (위: 유월 초, 들여온 당일 찍은 사진 / 아래 : 며칠 전인 구월초에 찍은 사진. 처음 이상을 감지한 게 칠월 초의 일이니 고작 한달 사이에 이 정도로 급격한 색 변화가 일어난 셈이다)
    문제를 인식하자마자 고무나무의 위치를 북동향 뒷베란다에서 남서향 앞베란다로 옮겼지만
    앞 건물 그림자에 가려 낮동안에도 여전히 충분한 광량을 확보하기가 힘들었다.
    가장 햇빛이 셌던 팔월 중순에 났던 잎 세 장을 빼고는
    여전히 큰 변화가 없었고 구월 들어 일조량이 줄어들자마자
    다시 잎 색이 빠르게 어두워지고 있었다.
    이럴 바에야 다시 원래 위치였던 내 방 옆 뒷베란다에 갖다두고 식물용 인공조명을 설치하는 것이 낫겠다 싶어
    경기도 농업기술원이 운영하는 식물병원에 문의도 해보았다.
    식용 작물이 아닌 관엽식물에도 인공조명이 효과가 있을지에 대해서.
    하지만 내가 문의한 것 같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실험은 이루어진 적이 없는지
    이렇다 할 답은 얻지 못했다.
    그저 인공조명을 시도한다면 1만 룩스 이상의 강한 빛으로 해보라는 조언 정도였다.
    갑갑한 마음에 일본 웹도 뒤졌다.
    몇몇 원예 전문 사이트나 야후 재팬 등에서 그래도 희망이 될만한 글을 발견할 수 있었다.
    지금은 업체를 선택하기 위해 좀 더 검색 중이다.
    이 와중에 알아낸 원예 관련 일본어로 先祖がえり가 있다.
    정확히는 원예 용어라기 보다는 생물학 용어로서 한국어로는 '격세유전'으로 번역되는 모양이지만
    이 경우에는 세대가 바뀔 때 일어나는 유전은 아니므로
    격세유전이라고 하기는 좀 그렇고..
    '조상님 형질의 귀환or부활' 쯤 될까?
    고개를 갸우뚱하게 만드는 이 단어의 이 맥락에서의 뜻은 이렇다.

    무늬가 있는 식물의 경우 원래부터 그런 것보다는
    어느 땐가 일어난 돌연변이(자연적으로든 인공적으로든)로 인해 그렇게 된 것이 많은데,
    이것이 환경이 변화(악화)하면 예전 형질로 돌아가 민무늬가 돼 버릴 때가 있다고 한다.
    아마도 주변 환경이 불안해지면 사람이나 식물이나 모두 보수적이 되는 모양이다.
    사실 식물 입장에서 생각해 보면,
    하나의 이파리에서 어느 부분은 초록색, 어느 부분은 노란색 하는 식으로 구획을 지어 물과 영양분을 공급하면서 중국처럼 일국양제(?) 시스템을 유지하는 것이
    비상시에 그다지 효율적인 생존전략이 아닐 것임은 쉽게 추측할 수 있다.
    내 벵갈고무나무의 경우 굉장히 선명한 얼룩무늬가 있었지만
    원래 자연상태에서는 그렇게까지 화려하지는 않았을 것으로
    처음에도 어슴프레 느꼈더랬다.
    그러다가 노지(처음 사올 때 화훼농가 노지에 있었다)에서 실내로,
    그것도 채광이 썩 좋지 않은 집으로 옮겨오게 되면서
    생존의 위협을 느끼고, 그에 따라
    쓸데 없는 데 에너지를 낭비하지 않기 위해
    허리띠 졸라매면서(?)
    오래 전의 원시적인 형질이 갑자기 나타나게 된 것인가 보다.
    그냥 잎 색이 어두워지는 걸 넘어
    아예 무늬 없는 형질이 나타나고
    그런 잎들이 급속히 나타나는 걸 보면서도
    그저 일시적인 현상이길 바랬는데 ㅠㅡㅜ
    더 안 좋은 소식은, 한번 어두워진 화초는 햇빛을 쪼인다 해도 다시 화려하고 밝아지기 힘들다는 것이었다.
    그래도 여전히 나는 인공조명 말고는 대안을 찾을 수 없어 찾아보고 있는 중이지만.

    문득 며칠 전 읽었던 김애란 단편집 속 소설 <가리는 손>의 다음과 같은 문장이 생각난다.

    -'이해'는 품이 드는 일이라, 자리에 누울 땐 벗는 모자처럼 피곤하면 제일 먼저 집어던지게 돼 있거든.

    나는 예뻐해준다고 예뻐해준 것 같은데 벵갈고무나무는 자리에 누울 때 제일 먼저 벗어버리는 모자처럼 그 아름다운 얼룩무늬도 거추장스럽다는 듯 집어던지려 하고 있는 것 같다.
    뭔가 야속하기도 하지만
    무언가를 '키우겠답'시고 그들의 생존방식,  언어에 대해서는 그냥 모른 걸 넘어 알고자 하지도 않았던 것이니 내 잘못이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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