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엉뚱한 게임 사이트에 가입이 되어 있는 등
명의도용 문제로 며칠을 싸운 끝에
오늘은 오래 전에 가입한 채 탈퇴하지 않고 있는 프리챌커뮤니티에 메스를 들었다.
한때 열심히 활동했었는데..이젠 정리대상이 된 것....
그놈의 유료화로 이용자가 하나둘 떠나가 버린커뮤니티 서비스의 부활을 위해
프리챌 운영자들은 딴에 절치부심한 모양이지만
적어도 내가 가입해 있던 커뮤니티들은
수 년 간 누구 한 명 지나간 흔적도 없이 괴괴함만이 가득했다.
종이에 적힌 글이었다면접히거나 닳거나 바래기라도 해서
나와 같이 나이를 먹어왔구나..할 텐데
박제처럼 고스란히 남아있는
회원들의 이름과 그들이 남긴 흔적은
반가움과 함깨
무어라 말하기 힘든 괴리감을 안겨주었다.
아래는 한 1년간 활동했던 답사반 커뮤니티 자유게시판에 올렸던 글.
내가 내 글을 옮겨 오다니 이상하지만,
한때의 게시판 죽돌이 죽순이들조차 얼굴 한 번 디밀지않는그 커뮤니티를
어느날 마스터가 문득 없애버리면 어쩌나, 하는 걱정이 드는 것이었다.
인터넷에서 보고 읽는 이미지와 텍스트란 그렇게너무도 뚜렷하고생생하다가도
'삭제' 클릭 한 번으로 신기루처럼사라져 버릴 수 있는 거니까.
그렇게 되기 전에, 내 과거의 모습을 스크랩해 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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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1-10-21 오전 1:34:39
제목 : 원생이와 함께 한 하루..
청명한 가을날..(비록 오후엔 좀 흐려졌지만...^^)
몇 년 만인지...서울대공원에 갔다..
안양 산다는 죄(!)로 봄가을마다 거르지 않고 교복입고
(중학교 땐 노란 체육복 입구 간 기억도 난다..ㅡ.ㅡ)
갔던 설랜드 주변..변한 건 별로 없는 듯 보였당...
인류학 수업의 연장으로..고릴라와 오랑우탄 및 긴꼬리 원숭이들을
관찰하기 위한 특별 야외수업이었다.
준비물은 미리 배부받은 기록용지, 스케치용 필기도구와 책받침,
행동관찰 시간 체크용 스톱워치, 그리고 가장 중요한 도시락!!
무슨 대단한 수업이길래 셤 끝난 주 토욜에 야외수업까지 가는 열성을
보이냐고 묻는다면...태어나고 입학해서 수업이란 걸 들은 이후로
젤 좋아하게 된 선생님 수업이므로..빠질 수 없다..절.대.루;;
오전 11시 서울대공원 동물원 입구..
갔더니 역시..도시락 싸오라는 교수님의 강조에도 불구하고!!
어쩜 하나같이 싸온 건 단 한 명 빼고는 죄다 여자들 뿐인지...
"얘랑 같이 사왔거든여.."하며 옆 친구(물론 여자)에게 꼽사리 꼈다가 들통난 유형에서
아예 당당(?)하게 젓가락도 아니구 손가락!!-_-만 가져온 인간들까지..
짜증난다..;;;앞에서 김밥도 많이 팔더구만..
"수컷들은 도시락 안 싸오는 종이다"라는 평소의 지론을 다시 한 번
절감했다며 몸으로 때울 것(?)을 명하시는 교수님의 말씀에 자기들도 끄덕..
맨 앞자리에 앉기 때문에 이렇게 모르는 얼굴들이 많은가..했더니
설대학에서 체질인류학 섭듣는 애들과 조인트..란다..
(이 강사분께선 설대학교 인류학과 교수..)
아프리카 및 아시아에 분포하는 원생이들과 무료함으로 온몸을 구기고 있는
고릴라 및 오랑우탄들을 그리고, 그들에게 필기도구를 뺏기고 하며..
일지를 작성하는 과정이 그다지 지루하지 않았다.
신기한 건, 동물원에 갔으면서
오히려 내 주의를 끄는 건 인간들이었다는 것!!
하긴 인간도 동물이니, 인간 구경한다해도 틀릴 건 없다.
변태 취급만 안 당하면 된다..
방금 전까지 때리고 위협하다가도 교미 전에 털고르기를 하며
구애행동을 하는 수컷(일단 교미 후엔 나 몰라라..ㅡ.ㅡ),
남편이 아닌 젊은 수컷과 교미를 했다가
남편에게 들키자 뻘쭘해하며 능청을 떠는 암컷,
(만또 원숭이는 수컷이 암컷 어렸을 적에 그녀를 집단에서 납치해 와서
말을 듣도록 폭력을 사용한다. 한 시라도 따라다니지 않으면 가차없다-_-
그런데..비단 이 녀석들뿐 아니라 대부분의 영장류에서 수컷은 폭력적이다.
피그미 침팬지는 예외라고도 하지만 이 경우도 수컷의 폭력성이 특별히
선천적으로 약하다기 보다 암컷의 집단 연대가 수컷의 폭력성을
진정시키는 방향으로 유도해낸 게 아닐까 하는 생각도 해본다. )
아무튼 의심도 호기심도 많고 하는 행동마다 인간과 너무 비슷하다..당연한가??^^;;
꼭 먹을 게 아니더라도 무언가를 철창 너머로 밀어주면 대단한 호기심으로
관찰하고 잡아당기고 뺏고 씹고하는데, 과자를 받으려 뻗은 손의 지문을 보고
아이들이 "똑같아~"하며 소리를 질렀다..
날씨 좋은 가을날이라, 플라타너스 낙엽이 영화처럼 우수수 소리 내며
떨어지는 그 동물원 길을 함께 걷거나 리프트 타고 공중으로 지나가는
커플도 많고 동물원 구경 온 유치원 아이들도 많았는데,
수컷사이의 위계 다툼, 암수간 폭행..같은
인간 사회에서보면 심각한 일들이 눈 앞에서 벌어지고 있는데도
마냥 즐겁고 아름답게(?)만 보이는 모양이다..쉼없이 깔깔거린다...-_-;
과자를 주면서도 원생이가 한 손만 내밀자 "두 손으로 받어!"하는 아자씨를 보았다..
저럴 거면 동물원 왜 왔지?-_-집에서 애나 볼 것이지..
결국 주던 과자를 치-_-사하게 자기가 먹었다..;;
동물원에서 두 손으로 과자를 받아먹는 원숭이를 보게 되는 날,
이런 곳으로 인류학 수업을 오는 의미가 없어질 듯 싶다.
이미 지금도 그 곳의 동물들은 인간들에게 지쳐있지만..
수업이 끝나고, 일지를 낸 다음 돌아오는 길에
뭐 재미난 거 없나하는 생각에 서점에 들러서
'다이고로야 고마워'와 '블루데이북'이라는 동물관련 에세이 책을
보았다..전에 인터넷 서점에서 50%세일 하는 걸 본 적이 있다..
둘 다 보고 있자면 잔잔한 감동이 일어난다..전자는 공해로 사지가 없이 태어난
일본 원숭이가 한 인간가정에서 일상을 함께 하며 생활하다가
2년 수개월만에 세상을 뜨게 되기까지의 실제 과정을 묘사한 책,
후자는 여러 동물들의 순간적 표정 포착을 통해 인간 감정을 투영시키고 있는
책이다...다만 지나치게 휴머니즘적인 시각에서 이야기를 풀어낸 것 같긴 하다..
집에오는 길에 보이는 모든 사람이 '인간'이기 이전에
영장류로 보였다..집에 와서도 거울을 보니 낮에 관찰했던
아누비스 개코 원생이가 자꾸 내 얼굴 위에 오버랩된다...ㅡ.ㅡ;;
방에 들어와서 보니 인터넷 서점에서 게릴라 세일(50%)하던 때를 운 좋게
포착해서 구입했던(半충동..;;) '게놈(Genome)'이란 책이 눈에 띈다..
셤도 끝났겄다...맘 편히 읽어보려 표지를 젖히자 저자 약력과 사진이
나올 부분에 얼굴 사진 대신 저자 자신의 염색체 배열 사진이 보이고
그 아래엔 "...신경과학자인 부인 애냐 허버Anya Hurlber와 염색체를
조합하여 완전하게 새로운 개체인 2명의 자녀를 만.들.어.냈.다...."라는
소개글이 적혀 있다...산 첫 날도 보긴 했지만 오늘 보니 느낌이 좀 다르다..
꽤 오래 전에 봤던, Jude Law가 나오는(카리스마로 Ethan Hawke를 눌러버리는;;;)
'가타카'라는 영화 생각도 난다..
이것저것 구경하고 보면서 나름대로 재밌게 보냈던 하루...
그만큼 잡다한 생각이 든다..
내가 생명체로 이 세상에 등장하게 되었다는 것은 참 놀라운 일이지만
그 중에 하필 인간으로 태어난 게 과연 그 '경이로움' 중의 얼마만큼을
차지하고 있는지는 모르겠다..'모든 생명있는 존재는 아름답다'는 말이
서점에서 본 책들 중에 써 있었지만..과연 그럴까??하는 생각도 드는데,
이런 생각 때문에 종종 전도사들의 좋은(?) 목표가 되곤 한다....;;
음음...뜻하지 않게 글이 정말 주절주절..길어졌지만..
원생이 바라보며 이렇게 하루를 보내는 것도
참 재미있다^^ 언젠가 맑은 날을 골라서
딱히 할 일도 없고(물론 따져보면 늘 할 일은 있다;;)
쩐도 별루 없고(설대공원까지, 그리고 집까지왕복 차비 대략 2,500원 안팎, 동물원까진 걸어서..
동물원 입장료는 성인 1500원, 점심은 도시락..;;)
가까이 산책 겸 구경 겸 나가보구 싶다면
동물원 구경도 생각보다 재밌으니 가보는 것도 좋을 거다..
과천 쪽이 멀다면 중곡동 어린이대공원이라도...;;
단, 옆에서 가슴 속을 득득 긁는 암,수 호모 사피엔스들의 구애행동을
참을 수만 있다면..........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