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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나를 지키며 일하는 법
    보고 듣고 읽은 것들/책 2019. 1. 31. 18:43


    출판사 일하는 지인 찬스로 얻어 읽었다.

    무슨 인연인지 강상중씨 책은 세 권 갖고 있는데 셋 다 지인에게서 받은 책이다. 


    작업실에도 책을 몇 권 갖다놨는데

    마음이 해이해질까봐 에세이류처럼 가벼운 읽을 거리는 되도록 두지 않았다.

    이 책은 형식적으로는 에세이지만 요즘 관심 있는 '일'과 '삶'에 대한 내용이라 예외로 삼았다. 

    아무래도 '삶의 한가운데' 나이에 도달하고 보니

    무언가를 더 배우고 익히는 것도 중요하지만

    지금 현재 가지고 있는 것들-성격, 능력, 지식, 건강 등-로

    남은 절반의 삶을 어떻게 보내야 할지, 어떤 의미를 추구하며 어떤 선택을 해야 할지 하는

    본질적인 생각을 종종 하게 된다. 나이 들었다는 뜻이다. 


    책은 저자의 자전적인 이야기, 일의 의미, 독서, 역사 속 리더가 주는 교훈, 불활실성이 커져만 가는 현대 사회에 관한 생각으로 구성되어 있다.

    모두 '일'과 관련된 이야기지만 초반의 '일의 의미'에 관한 부분이 특히 기억에 남는다. 

    저자에 따르면 일은 '사회로 들어가는 입장권'이자 '나다움'을 추구하는 수단이다.

    그런데 지금까지의 세계가

    입석표라도 구하면 그 안에서 어떻게든 지지고볶고 살아갈 수 있는 기반을 미약하게나마 마련해 주었다면

    앞으로 이 입장권의 가치는 점점 유동적이 될 모양이다. 

    내가 그 안에서 뭔가 의미를 찾고 계속 그 일을 할 수 있다면 

    어쩌면 입석이라도 그럭저럭 전망 좋은 자리를 한동안 차지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지 못하면 사회에 들어가긴 들어갔으되 그 안에서 '자리를 만들어내는 것'부터 다시 시작해야 할지 모른다.

    점점 '나다움'이라는 것, '내가 어떤 인간인지 안다는 것'이 중요해지겠지.

    나다움을 찾으려 하고 있다니, 중2들이나 할 법한 소리지만

    사실 나는 아직도 직업 세계에서 '나다움'을 발견하지 못했다. 

    내가 무엇을 더 재미있어 하고 열정적으로 할 수 있을지...?

    몇 가지 잔꾀로 여기저기 찔러보기만 수 차례.

    아직 답은 보이지 않는다. 

    지금의 내 일은 큰 보람과 약간의 좌절을 주었고 전반적으로 만족을 느끼게 해주었다. 

    '나다움'과는 얼핏 대척점에 있는 일을, '사회에 들어가는 입장권' 같은 추상적인 의미 따위 별로 생각해 보지 않은 채 선택했지만

    운이 좋았다. 

    하지만 앞으로 10년은 지금까지 10년과는 완전히 다른 시기가 될 것 같다. 

    미래는 어느 세대 어느 나라의 누구에게나 알 수 없는 것이었겠지만

    지금의 불확실성은 미증유라는 생각이 든다. 

    그런 세상에서 강산이 한두번 더 바뀌고 내 나이도 지천명이 되었을 때 스스로에게 어떤 성적표를 줄 수 있을지. 

    강상중씨가 그 답을 제시해주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앞 세대의 멘토와 일에 관해 한바탕 진지한 이야기를 나눠보았다는 생각은 들게 하는 책이다. 

    추천 도서로 소개된 책 중에서는 칼 폴라니의 '거대한 전환'을 한번쯤 읽어보고 싶지만

    어느 세월에 읽게 될 지는 모르겠다.

    늘 그렇지만 웹툰 볼 시간은 있어도 고전 읽을 시간은 평생 안 나는 게 나같은 보통 사람의 삶이니까....--;


    번역과 윤문, 편집은 다소 아쉬움이 남는다. 

    일본 책은 되도록 원서를 구해 읽으려 하는데

    아무래도 한국어에 노출되는 시간이 더 길기 때문에 조금이라도 이를 보정하기 위해서기도 하지만

    직업병인지 남의 번역문만 보면 매의 눈으로 시시콜콜 마음에 안 드는 부분을 잡아내게 되어 (물론 내 번역문은 동태눈으로...)

    스스로 생각해도 좀 꼴불견일 때가 있다. ㅋ

    그래도 몇 군데 뽑아 보자. 

    대학원 수업 교재로 썼다면 열에 여덟아홉 지적이 나왔을 법한 곳들이다. 


    '군발지진' -12p

    '생리적인 공포' -19p

    '상아의 탑', '~외부를 향해 발신해야 합니다' -32p

    '자이니치' -33p 

    '어떤 역할을 담당한다는 실감을 가질 수 있습니다' -39p

    '세상의 축도' -67p

    '어전 경기' -72p

    '그래 봤자 만화, 그래 본들 만화' -78p

    '고양이든 주걱이든 가리지 않고 모두 사회주의를 예찬했으며' -82p

    '제 안은 안도감 혹은 요행에 가까운 감각으로 가득했습니다' -86p

    '외딴 섬에 표착했기에' -132p

    '독립적이고 독보적인 데다가', '대담하고도 곤란한 계획을 세웠습니다'-165p

    '미우라 데쓰타로의 입론을 계승, 발전' -173p

    '대량살상무기를 보유하고 있더라도 열화되어 쓸 수 없지 않을까' -202p


    강상중씨의 전작인 '재일 강상중'은 원서로 읽었는데

    일본인은 일상생활에서 잘 쓰지 않지만 한국에서는 평상시에도 비교적 흔히 듣는 한자 단어를 많이 쓰고 있어

    저자가 학자라 그런 것인지, 그냥 개인적인 성향 때문인지 궁금했던 기억이 난다. 

    그래도 '재일 강상중'은 자서전이니 그러려니 했는데, 

    이런 에세이류는 단어 하나하나 일본식 표현에 구애될 것 없이 적절히 뜻만 통하게 번역해도 보통은 크게 문제되지는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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