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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래는 다음 아고라(http://bbs1.agora.media.daum.net/gaia/do/debate/read?bbsId=D115&articleId=135684)에서 퍼온 글이다.
<삼성 때리기와 노무현 때리기. 공포와 위협 사이>
영화 '브이 포 벤데타(V For Vendetta, 피의 복수)'는 인간의 '공포(Phobia)'를 정치적으로 이용하는 국가와 이에 대항하는 시민의 대결을 그린 영화이다. 영화의 선각자 V가 혁명의 날로 정한 날은 11월 5일이다. 1605년 11월 5일, 영국 국교회가 장악한 왕실의 횡포에 맞선 가이 포크스를 기리기 위해 2005년에 제작한 영화라는 배경이 11월 5일에 대한 의문을 해결해 준다. 영화는 사실 9.11을 방조했다는 의심을 받는, 그리고 미국인의 공포를 이용해 이라크 전쟁을 일으킨 '부시'를 풍자하기 위한 영화였을 것이다. 그런데 우연인지는 몰라도 2007년 11월 5일 대한민국에서는 '삼성 왕국'과의 전쟁을 선포한 한 시민과 시민단체의 양심 선언이 있었다. 어쨌거나 영화 속 V의 혁명은 성공하였지만, 현실 속 양심선언의 주인공이 성공할 수 있을지는 아직 미지수이다.
그 주인공의 양심선언이 어떤 계기에서 비롯되었건 그것은 중요하지 않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진실이며 진리일 것이다. 그래서 지금 우리 국민들이 가슴에 새겨야 할 것은 브이 포 베리타스(V For Veritas, 진리)라고 말하고 싶다. 11월 5일이라는 묘한 일치 외에도, 영화 브이 포 벤데타의 메시지는 '삼성'이라는 거대 재벌이 우리 사회에 시사하는 점과 묘하게 맞닿아 있다. 올 해 초 삼성 이건희 총수는 삼성 위기론과 대한민국 위기론이라는 것을 설파하였다. 삼성이 지금은 잘 나가는 회사이지만, 언제든지 위기에 봉착할 수 있고, 삼성의 위기는 대한민국의 위기를 불러올 것이라는 요지의 말이었다. 그 파장은 실로 엄청났다. 언론과 인터넷이 이건희 회장의 위기론으로 들썩거렸고 우리 경제의 '성장 한계'에 대한 논란도 불거졌다.
이건희 회장의 장남 이재용 씨에 대한 변칙증여 사건이 재판에 계루 중이던 시점에 터져나온 '삼성 위기론'은 '대한민국 위기론'을 일으켰고, 재판은 또 다시 연기되었다. 여타 다른 재벌들, 심지어 정몽구 회장까지 재판을 받았지만 이건희 회장은 건재했고, 대한민국 국민들은 대한민국이 삼성 공화국이라는 말을 다시 한 번 실감했다. 몇 해 전인가, 유럽 각국을 방문한 이건희 회장을 맞이하기 위해 분주하던 삼성 유럽 지사 중 한 곳에서 아르바이트를 한 유학생의 체험기가 화제가 된 적이 있었다. 그룹 총수를 맞이하기 위해 한 달 전부터 준비하느라 업무는 뒷전이었다는 당사자의 고백은 그룹의 한 총수가 실제로 일국의 대통령보다 더 존귀하게 대접받는 현실을 잘 보여주었다.
한 그룹의 총수가 제왕처럼 대접받고, 그룹의 온갖 부조리와 횡포에도 불구하고 법의 잣대에서 자유로울 수 있었던 가장 큰 이유를 말하자면, 그것은 바로 '공포(Phobia)'와 '위협(Menace)'일 것이다. 공포라는 것은 실체가 없고 가능성도 낮으며 증명하기도 어렵다. 반면 위협은 실체가 있으며 가능성도 높고 입증 가능한 것이다. 삼성은 '삼성 위기론'과 '대한민국 위기론'이라는 '공포'를 매우 잘 이용해왔다. 이건희가 없으면 삼성이 망하고, 삼성이 망하면 대한민국이 망한다는 공포는 경제 성장에 목말라하는 대한민국의 장삼이사들을 잠재적인 공포로 몰아넣었다. 그리고 평소 떡값이라는 이름의 당근과 퇴직 고위 공직자 특채제도는 사회 지도층이 삼성의 굴레에서 자유로울 수 없도록 만드는 '위협'이었다. 그리고 그러한 공포와 위협이 삼성이라는 울타리를 법의 무풍지대로 만들어 주었다.
하지만 이제 많은 국민들이 이러한 공포와 위협에 대해서 더 이상은 방관할 수 없다는 점을 깨닫기 시작하였다. 삼성 반도체와 관련한 아주 유명한 '황의 법칙'이라는 것이 있다. 메모리 반도체 칩의 용량 집적 기술이 1년마다 두 배로 향상된다는 법칙인데, 7년 동안 삼성 반도체는 이 법칙을 사실로 입증해 보였다. 하지만 이제 우리 국민들은 '삼성의 법칙'이라는 것을 각성해야 할 시점이다. 삼성의 부조리와 횡포와 무법이 1년 지속될 때마다, 대한민국의 위기는 두 배씩 증대한다는 것을 말이다. 이건희 회장이 법의 처벌을 받으면 삼성은 망하는가? 삼성이 망하면 대한민국은 망하는가? 이건희 회장의 경영 능력까지 폄하할 생각은 없다. 하지만 삼성이 대한민국의 최고가 되고, 이건희가 삼성의 주인 노릇을 할 수 있는 것이 오롯이 그의 능력 덕분이라고 말하는 것은 거짓이다.
박정희는 자신이 대통령직에서 물러나면 국가가 위험에 처하고 경제가 성장할 수 없으며 북한이 쳐들어 올 것이라고 했다. 박정희는 죽었지만 대한민국의 경제 성장은 멈추지 않았고 북한군은 쳐들어 오지 않았으며 사회는 무법천지가 되지도 않았다. 이건희 회장이 삼성에서 물러나도 삼성은 망하지 않으며, 삼성이 해체되어도 대한민국은 망하지 않는다. 박정희와 이건희의 자기 존재 합리화는 그저 공포였을 뿐이다. 삼성이 성장한 것은 삼성에 몰려든 수 많은 인재들과 비정규직과 같은 저임금 근로자, 하청 업체의 고혈 덕분이었다. 대한민국이 성정한 것은 부지런하고 똑똑한 대한민국 국민들의 희생과 열정이 있었기 때문이다. 전적으로 이건희와 박정희 덕분은 아니라는 것이다.
그렇지만 박정희의 종신 독재와 언론 탄압, 사상 탄압, 민주화 탄압은 대한민국에 대한 실질적인 위협이었다. 이건희의 제왕적 그룹 지배와 삼성의 횡포는 우리 사회에 실질적인 위협이다. 그리고 이러한 위협이 얼마나 무섭고 집요한 것인지를 '시사저널' 사태는 잘 보여주었다. 프로축구팀 수원 블루윙즈 서포터즈의 열정적인 응원과 적극성은 아주 유명하다. 2002년 이후로 우리 대표팀의 응원 구호가 된 '대~한민국'도 사실은 '수~원삼성'에서 유래하였다. 그런데 최근 수원의 응원 구호가 바뀌었다. 삼성은 빠지고 '수원'만 남은 것이다. 사실 한 때 삼성 직원 가족이 인구의 30% 가량을 차지하던 수원에서 삼성의 영향력은 실로 막강한 것이었다.
아주 오랫동안 수원에서 1위 신문은 중앙일보였다. 하지만 수원에서도 이제는 변화의 조짐이 보이고 있다. 아주 많은 수원 시민들이 그룹의 회장과 그룹 못지 않게 오만하고 이기적이 되어가는 삼성 직원들의 모습을 목도하고 있다. 그룹과 그룹 구성원들의 지나친 선민의식과 사회적 무책임은 삼성에 가장 호의적이어야 할 수원 시민들의 응원 구호까지도 바꾸어 버렸다. 점점 더 많은 사람들이 '삼성 국가 경제 위협론'에 귀를 기울이고 있으며, 변화의 필요성을 절감하고 있다. 삼성이 던지는 당근을 과감하게 뿌리치고 이제 삼성을 향해 채찍을 들어야 할 때라는 것을 말이다.
한 편, 지난 일요일에는 KBS 심야토론에 6당 국회의원들이 참여하여 대선 정국에 대해 토론을 벌였다. 그런데 타당의 국회의원은 그렇다치고, 통합민주신당의 국회의원까지 나서서 참여정부와 노무현 대통령을 폄하하고 때리기에 동참하는 모습을 보면서 기가찼다. 도대체 밑도 끝도 없는 참여 정부 무능론과 국가 경제 위기론의 실체가 무엇인지 참으로 답답하게 느껴졌다. 물론 지난 5년 간 우리 경제가 성장 정체에 빠지고 사회 양극화가 심화되었으며, 비정규직과 실업자가 양산되었다는 사실을 부정할 수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조근조근 생각해 보면, 그것이 노무현 대통령의 탓이고 정부의 탓이라고 말 할 수는 없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물론 나는 참여정부의 한계와 오류에 대해서 인정하는 편이지만 실패라고 평가하지는 않는다.)
자유주의자들과 시장경제론자들의 주장은 무엇이었는가? 경제는 시장에 맡기라는 것이었다. 시장에 맡기면 알아서 돌아간다고 말하던 자들이 정부가 경제를 살리지 못했다고 비난하는 것 자체가 어폐인 것이다. 거기에 더해, 신자유주의 경제와 부동산 투기, 자유 무역으로 가장 큰 이익을 본 자들이, 가장 호의호식하고 권세를 누리는 자들이 못살겠다고 말하는 것을 보면 정말이지 헛웃음만 나올 뿐이다. 대통령 노무현을 맘에 들어하지 않은, 또 대통령 노무현에게 모든 책임을 전가하고 싶어하는 정치인들이 말하는 '노무현 무능론', '참여정부 실패론'은 그 실체가 없는 것이며 그저 '확산된 공포'에 불과하다. 노무현이 실패했다면 부자나 서민이 아닌 국민 전체의 이익과 미래를 우선했다는 것이며, 그것이 실패라고 한다면 대한민국은 더 이상 희망이 없는 것이다.
유럽을 중심으로 한 세계는 왜 대한민국의 경쟁력이 세계 11위라고 했을까? 참여정부가 추구해 온 투명하고 정의로운 사회, 합리적인 탈 미국중심주의, 선 평화 후 통일 정책이 옳았고 또 효과를 발휘하였다고 인정했기 때문이다. 대한민국이 고도로 성장하고 있고, 부동산 공화국이기 때문은 아니라는 말이다. 한국의 사회적 투명성이 낮은 것은 국민들의 투명성이 낮은 때문이지 대통령의 투명성 때문이 아니다. 하지만 투명성을 추구해 온 정부의 정책은 인정받고 있다. 또한 남북의 평화 체제를 통해 이제 유라시아 대륙은 끝에서 끝으로 연결될 차비를 하고 있고 그 핵심에 대한민국이 있는 것이다. 그리고 노무현은 우리 사회의 '정의의 값'과 '평화의 값'을 올려놓은 것이다. 노무현 재임 5년 기간 국민들은 마음 놓고 대통령을 비판하거나 비난했으며 심지어 모욕했다. 하지만 그 누구도 경찰이나 검찰에 불려갔다는 말은 들어보지 못했다.
그런데 아직 대통령도 되지 않은 자의 수족들이 국민의 입을 통제하고 있다는 말이 들려온다. 새로운 공포 정치의 시대가 도래할까 두려운 이유이다. 국가의 최고 지도자를 욕보이면서까지 자신들의 정치적 야욕을 충족하려는 정치인들의 모습을 보면서 나는 대한민국을 뒤로 잡아당기는 실체적인 위협을 목격한다. 자기 당이 내세우는 깜도 안 되는 후보들을 영웅으로 만들기 위해 지금의 대통령이 실패하였다는 공포를 확산시키는 정치인들을 바라보면서, 2007년 11월 지금 우리 사회를 거대한 위협과 위험 속에 몰아 넣고 있는 자들이 과연 누구인지 되묻지 않을 수 없다. '삼성 위기론'은 공포이다. 그러나 '삼성 망국론'은 우리 앞에 놓인 위협이다. '노무현 실패론'은 공포이다. 그러나 '경제 대통령 지상주의'는 위협이다. 삼성을 때릴 것인가? 노무현을 때릴 것인가? 조금만 생각해 보면 나오는 답이 아니던가? 당신은 지금 이 시점에 누굴 때려야 할지 알고 있는가?
( 삼성개혁시민모임(http://cafe.daum.net/ssrcm)에서 토론이 진행 중이라고 하네요. 관심 있는 분들은 동참하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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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이 글을 싣고난 지금 문득 떠오르는 것
나의 이 블로그는 네이버에 속해있고
내가 가입한 펀드에서는 삼성SDI에 투자하고 있다는 사실.
감출 수 없는 모순.
<불편한 진실(An Inconvenient Truth)>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