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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발 하라리 & 북클럽 오리진 인터뷰골판지 2016. 5. 5. 12:00
http://1boon.kakao.com/bookclub/minibook20160505
몇 달 째 서점 베스트셀러 목록 상위에 랭크되어 있는 빅히스토리 도서 <사피엔스>의 저자 유발 노아 하라리 교수와 북클럽 오리진 주인장과의 인터뷰. 지난달 말 유발 하라리 교수는 한국을 처음 방문한 이래 수많은 매체나 인터뷰어와의 인터뷰, 저자 강연회 등을 했고 <사피엔스>를 워낙 흥미진진하게 읽은 덕에 나도 관련된 기사는 되도록 챙겨 읽으며 경희대 강연회도 찾아갔다. 그 중 최재천 국립생태원장과의 인터뷰와 함께 이 북클럽 오리진 인터뷰가 가장 기억에 남는다.
다른 질문과 대답은 다른 인터뷰에도 많이 나오는데 북클럽 오리진과의 인터뷰에서 개인적으로 가장 관심있었던 부분은 유발 하라리에게 있어 '삶의 의미'가 무엇인지, 앞으로 새로 정립될 도덕적 가치에서는 무엇이 중요하리라 보는지, 이 두 가지 질문에 대한 저자의 대답이었다. 그 답은 '이해'와 '실재'로 귀결된다.
먼저 '이해'.
Q>삶의 의미가 중요한 문제이고 각자 답을 찾아야 할 문제라면, 당신에게 삶의 의미는 무엇인가요?
A>음...(물을 한 모금 마시면서 잠시 생각을 한 후에) 저는 개인적으로 삶의 의미보다는 진실(truth)에 더 관심이 있습니다. 실상(reality)을 이해하는 겁니다. 나 자신과 세상에 대한 진실을 아는 것. 그게 제게는 가장 중요합니다. 아마도 그게 제 인생에 의미를 주는 것이라고 할 수도 있겠습니다. 그것이 저로 하여금 노력을 하게 합니다. 세상에 대한 진실을 이해하기 위한 노력...요즘 읽고 있는 책의 저자들이 자신의 삶의 의미, 혹은 인생에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가치로 '세상을 이해하는 것'을 거듭 언급하고 있는데 유발 하라리 역시 마찬가지다. 우연은 아닐 것이다. 과학자든 소설가든 역사학자든 인간과 세상에 관한 탐구를 하는 모든 이에게 이토록 복잡다단하고 오묘한 세상의 진실이야말로 삶을 송두리째 바쳐서라도 알고 싶은 단 하나의 진실일 테니. 그렇다면 내 삶의 의미는..? 불과 35세의 나이에 이런 대작을 완성한 사람들의 지혜를 '이해'는 커녕 따라가거나 묻어가는 것조차 벅차기 그지없는데 '세상을(특히 그 실상을) 이해'한다고! 일단 현재 나에게 그럴만한 용기와 지적, 신체적 힘이 있는지 묻는다면 대답은 아주 회의적이겠지만...그럼에도 불구하고 역시 '이해(하고자) 한다'는 것은 나같은 평범한 인간에게조차 무엇보다 강렬하고 매혹적인 삶의 테마, 아니 그것을 넘어서 어쩌면 일종의 본능에 가까운 것인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실재'.
Q>...전통적인 도덕적 가치와 덕목이 여전히 중요하다고 보십니까? 그렇지 않다면 대안은요?
A>...앞으로 강한 도덕적 기초를 만들어낼 때에 결정적으로 중요한 것은 허구에서 실재를 명확히 구분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무엇이 정말 실재하는 것인지(what is really real)?' 물어야 합니다.
실재하는지 여부를 가려내는 최선의 시험 중 하나가 고통입니다. 어떤 존재가 실재하는지 알고 싶다면 자신에게 이 질문을 해보시기 바랍니다: "그것은 실제로 고통을 느끼는 것일까?"
제우스 신전이 불타내린다고 해서 제우스가 고통을 느끼지는 않습니다. 유로 가치가 폭락한다고 해서 유로가 고통을 느끼지는 않습니다. 은행이 파산한다고 해서 은행이 고통스러워하지는 않지요. 국가가 전쟁에서 패한다고 해서 국가가 실제로 고통을 느끼는 것도 아닙니다. (여기서 주어로 쓰인 것들은) 모두 단지 은유일 뿐이지요.
반면에, 한 병사가 전투에서 부상당하면 그는 실제로 고통을 느낍니다. 투자자가 주식시장 버블이 꺼지면서 재산을 잃게 되면 고통을 느낍니다. 산업화된 대규모 공장식 농장에서 젖소가 갓 태어난 송아지와 분리되면 고통을 느낍니다. 이런 것은 실재하는 것입니다. 우리의 도덕은 어떤 허구에 봉사하기보다 실재하는 고통을 줄이는 것을 목표로 해야 합니다.
<사피엔스>에서 저자는 유사이래 인간사회를 강력하게 지배해온, 하지만 실상을 보면 인간의 상상력의 산물에 불과한 것으로 세 가지를 거론하고 있다. 돈, 종교, 제국이 그것. 스스로 종의 이름까지 '생각하는 사람'이라 명명한 사피엔스 답게 우리는 실제 물리적으로는 존재하지 않는 것에, 오로지 사고작용만을 통해서 상상 속의 '실체성'을 부여하는 데에 별다른 한계도 저항도 느끼지 못한다('그 존재가 물리적으로 증명되는 것만이 실재하는 것이라 할 수 있는가? 그렇다면 가령 인간의 의식은 물리적으로 감지되지 않으니 실재한다고 할 수 없는 것인가?'하는 반론이 있을 수 있는데, 상당히 철학적인 질문이 되므로 여기서는 패스한다). 반면 정작 실제로 존재하는 것들, '적어도 우리의 감각 기관이 감지하고 보고하는 정보에 따르면' 분명 존재하는 그들의 고통에는 끔찍할 정도로 무감각해지곤 한다. 저자는 책 속에서 '대량생산 산업사회에서 동물이 느끼는 고통'에 상당 부분을 할애하고 있는데, 실재하는 것의 신음소리에 귀를 기울이라는 저자의 목소리에 일관성이 느껴진다.
다만 기존 종교에서도 '어린 양'이나 '중생'의 고통을 도외시한 것은 아니었다. 문제는 언제나 그것을 받아들이는 이의 자의적인 기준과 해석이었지. 완벽에 가까웠던 기존 종교의 도덕률보다는 애초에 결함 투성이인 인간의 도덕성에 문제의 근원이 있다면, 차라리 다가올 인공지능사회에서 '도덕'이 인간의 영역이 아니게 되는 -대단히 위험한- 상상을 해본다. (물론, 거기 동의한다는 의미는 아니다. 어디까지나 상상일 뿐~)
결국 '실상(reality)'이든 '실재하는(real) 것'이든 모두 '실(實)'이다. 저자는 불교도인 것 같은데 불교에서는 세상은 '공(空)'이라고 하지 않는지? 그렇다면 저자가 생각하는 '실(實)'은 무엇일까? 선문답을 해보고 싶어진다.
유발 하라리 교수의 홈페이지 : http://www.ynharari.com/
최재천 국립생태원장과의 대담 http://media.daum.net/culture/others/newsview?newsid=2016042704162144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