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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업실에서_004] 절대 고요의 방
    골판지 2018. 12. 28. 18:42


    작업실은 한적했다. 

    그저께 그랬듯이 어제도, 어제 그랬듯이 오늘도.

    짐을 싣고 와 주었던 남친이나 방을 같이 보러 다녔던 엄마가 더 이상 오지 않게 되자

    이 방은 오로지 나만의 성이 되었다.

    놀러 오겠다는 지인도 있었지만 해놓은 것도 없이 사람만 부르기 민망해

    적당히 둘러대기만 하다 보니 친구들도 아직이다. 

    옆 방 사람들과도 통성명을 하기는커녕 안면조차 트지 않았다. 

    탕비실과 화장실의 온수 문제를 지나가는 다른 방 사람-작가라고 들었다-에게 몇 번 물어본 적은 있지만 

    퉁명스럽고 짧은 대답과 무표정한 얼굴에 더는 말을 붙일 마음이 들지 않았다.


    두 층 아래는 고시원이고 바로 아래층에는 교회가 있다.

    내가 있는 5층은 고시원이나 교회, 독서실은 아니고

    엄연히 '비즈니스 센터'라지만

    각자의 시간을 방해할 수 없는 어른의 룰이 지배하는 곳이 대개 그렇듯,

    주책맞게 먼저 손을 내밀기도 머쓱한 게 사실이다.

    거기에 내 방에는 아직 스피커마저 없다 보니

    천장의 온풍기 돌아가는 소리라도 멈췄다가는 적막이 시베리아 들판처럼 펼쳐진다.

    (폰 소리를 생으로 듣는 건 별로라 블투 스피커를 주문한 상태)


    L모사에서 일할 때 

    많은 사람들이 한곳에 모여 일하고 있음에도

    누구 하나 육성으로 말하는 이 없이

    모두 메신저로만 속닥거리는 가운데

    종종 내가 진공상태에 있나 하는 착각이 들곤 했다.

    그러다가 행여 뱃속에서 꼬르륵 소리라도 날라치면 

    그 소리를 어떻게든 '캄푸라치' 해 보고자 공연히 죄없는 키보드만 때려부술 듯 쳐대기 일쑤였다.

    그 적막함이 그나마 상대적인 고요함이었다면

    이곳의 적막함은 절대 고요, 그 자체다.

    온풍기가 하루 종일 웅웅 덜덜 소리를 내며 돌아가고 있는데도 그렇다.

    이유는 벽으로 둘러쳐진 하나의 공간 안에 나 말고는 '사람'이 없기 때문이다. 


    나는 기본적으로 혼자 있는 공간, 시간을 좋아한다. 

    그렇지만 이런 절대 고요까지 익숙한 것은 아니다.

    하루 이틀이라면 몰라도 일주일에 닷새를 

    아무도 없는 공간에 혼자 와서 혼자 점심을 먹고 혼자 떠들고 산책하다가 혼자 집에 가는 생활은

    비유하자면 절간 수도승, 혹은 독방의 죄수들의 그것이 아닐지.(마침 5##호이기도 하고).


    이렇게까지 쓰고 보니

    누군가가 지금 옆에서 말하는 것만 같다. (...환...청??)

    그럴 걸 몰랐냐고. 누가 등 떠민 것 아닌데 겨우 일주일 남짓만에 이게 무슨 소리냐고.

    나도 그렇게 생각한다. 

    그런데 이곳에 온 결정을 후회하는 것은 아니다. 

    아마 다시 몇 주 전으로 돌아가도 똑같이 혼자만의 공간을 구하러 다닐 것이다. 

    상대적인 고요, 군중 속의 고독이라는 것이 절대 고요보다 꼭 낫다고도 할 수 없다.


    조금 다른 얘기지만 내일은 친구들과 송년회를 한다.

    이때 흘러넘칠 말들 속에 기운 빠지지 않고 즐겁기만 했으면, 하고 벌써부터 살짝 걱정을 하는 내가 또 있다.

    그러고보면 내가 원하는 '사람과의 거리'라는 것, 최적의 '따로 또 같이'의 강도와 빈도라는 게

    생각보다 클리어하지 않은 것 같다.

    나이 먹으면서 사람이 왜 이리 쉬워지는 건 없고 까다로워지기만 하는 건지, 모르겠다.


    절레절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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