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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업실에서_017] 월요일 아침부터 십년감수
    걷고 쓰고 그린 것들/기억의 습작 2019. 2. 11. 19:10

    며칠 전 구입한 휴지케이스에는 희노애락, 네 가지 표정이 표현되어 있다.

    그날 그날의 기분을 이걸로 나타내 볼까, 하고 반 장난으로 샀고

    오늘 개시했는데

    첫 표정은 이거다.

    분노와 기쁨.


    오늘 오전 9시 나는

    집앞 불가마 찜질방의 세탁실에서

    시큼한 땀냄새가 나는 빨랫감 더미에 파묻혀 있었다.

    어제 깜빡하고 찜질방 바지 주머니에 넣어둔 채 그냥 온

    카드주머니와 현금을 찾기 위해서였다...

    세탁실에 운반돼 온 수백 벌의 찜질방 옷 속에서

    산삼 캐는 심마니, 간첩 잡는 정보부 요원 같은 심정으로

    간절히 카드케이스를 찾았지만 허사...

    화가 나기 시작했다.

    아, 나는 왜 이리 학습이 안 되는 인간인가.

    주머니에 중요한 것을 넣어놓았다가 홀라당 잃어버린 트라우마가

    내게는 이미 있기 때문이다. 

    십수년 전. 일본에서.

    그때는 금액도 컸다.

    그렇게 마음이 새까매졌을 때 쯤

    여탕 앞 빨래 수거함, 이제 곧 세탁실로 옮겨지려던 옷 바구니 속에서

    땀에 절어 후줄근해진 카드 케이스와 현금이 짠, 하고 나타났다..

    아아 세상에

    이렇게 반가울 수가...ㅠㅠ

    기쁨의 안도감이 밀려왔다. 


    덕분에 오늘 하루는

    이후 딱히 좋은 일이 있었던 것도 아닌데

    하루 종일 그저 감사했다.

    별일 없다는 게

    얼마나 큰 행복인지.

    얼마 되지도 않는 현금과 

    잃어버리면 좀 귀찮지만 사실 몇 군데 연락해서 재발급받으면 되는 카드 몇 장에

    마음은 잠시나마 지옥과 천당을 오갔다.

    더 크고 심각한 일들을 생각하니

    길바닥에 굴러다니는 돌 하나도

    괜히 차버리면 안 되겠다는

    어딘가 초등학생스러운 깨달음에 그저 머리를 조아릴 수밖에 없는 하루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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