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은 누군가가 자기를 쳐다보고 있으면
소리가 나지 않아도움직임이 느껴지지 않아도
미세하게나마 그 시선을 알아차린다.
이글거리는 태양 아래 한껏 달아오른한낮의 석조 사원을 대충 한바퀴 돌고 나온 나는
거의.......혼수상태였다.
인솔자가 무슨 말을 하는지도 도통 못알아듣겠고
눈 앞의 신전들은 틀에 넣고 찍어낸 듯 몽땅 똑같아 보이는데
더 이상 무슨 쪄죽을 관광이란 말인가. 빨리버스로 돌아가 에어컨 바람이나 쐬었으면.
이런 발칙한 생각을 하다가 문득 고개를 돌려보니 내 뒤에는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 빙긋이 웃어 보이는 압사라(천상의 무희)가...
그제야 정신이 들었다.
조막만한 얼굴에 커다란 눈, 약간 펑퍼짐한 코에수줍게 미소를 머금은 입꼬리가
영락없는 캄보디아의 여염집 여인네가 아닌가.
그러나 무엇보다 저 무희를 살아있어 보이게 한 것은
저 또렷한 눈동자였다.
어쩌면 나는
진짜로 인기척을 느껴 뒤돌아보았던 것은 아닐까?
어느 신전 어느 귀퉁이였는지는
사실 왕코르왓이나 일대 유적지에는
이와비슷하게 생긴 압사라 부조가 셀 수도 없이 많다.
그리고나를 기다리긴 커녕...천 년은 저 자리에 있었으리라.
게다가
앙코르왓을 대표한다고 하는 신비의 미소는 이게 아니고
바이욘 사원 안에 있는부조상(오른쪽-일명 바이욘의 미소)이다.
해가 저물어감에 따라 그림자 위치가 바뀌어
그 표정이 조금씩 변화한다나...
물론 그 거대한 크기며 부리부리하게 치켜뜬눈꼬리며
두툼하니 오묘한 육감을 드러내는 입술이
신비롭기도 하지만,
정작 나를 사로잡은 것은 저 카리스마 살인미소가 아닌
이름모를 선녀의 날아갈 듯 조용한미소였다.
미끄러질 듯 살포시 잡고 있는 저 나뭇가지는
누군가를 부르는 것도 같고
방울같은 저 꽃들을 흔들면
이른 새벽 산사의 목어 소리에 잠을 깨듯
만물이 깨어날 것도 같다.
조각에서 그다지 본 적 없었던
촛점있는 눈동자는나를 뚫어지게쳐다본다.
이미
버스로 돌아가 에어컨 바람이나 쐬고 싶다는
무엄한 생각은꼬리를 감추었다.
아무도 일개 선녀나
더위먹어 반쯤 넋이 나간 나에게는 신경쓰지 않았으므로
나는 사람들이 내부 구경을 모두 마치고 나올 때까지
홀로
이 아름다운 힌두교의선녀님을 알현(?)할 수 있었다.
아주 따스하면서도
절도 있는 미소.
신전에 얽힌 갖가지 이야기들, 신화들,
그 중에 머리속에 온전히 남아 있는 건 하나도 없지만
이 미소만은 내 얼굴에도 가슴 속에도 담아두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