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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삼청동 밥집의 인수위 특수와 송구영신
    골판지 2008. 1. 7. 16:59

    며칠 전 친구와 함께 은사님을뵙기 위해경복궁역으로 향했다.

    현재 몸담고 계신푸른역사(출판사)의 사옥이 그곳에 있기때문이다.

    점심시간에 맞춰 나오신 선생님께선 우리를 반갑게 맞아주셨고

    괜찮은 밥집이 있다며 같이 가자 하셨다.

    그런데 잠시후 무언가 생각나셨는지 다시 운을 떼신다.

    '생각해 보니그집이 작년 12월에 문을 닫는 것 같더라'는 것이었다.

    무슨 까닭인지는 몰라도 제법 소문난 가게가 문을 닫는다는 데

    살짝 아쉬운 마음이 들었다.

    그런데 이게 웬걸. 혹시나 하고가보니다시 멀쩡히 장사를 하고 있는 게 아닌가.

    평소 단골이셨는지 선생님께서 들어가시자

    가게 사람들이 아는 척을 하며 반겨주었고

    주왕산인지 어디서 나오는 약수를 공수해와 짓는다는 그 집 밥은

    광물질이 반응한 흔적으로 특이하게잿빛을 띄었다.

    밥맛은 참 좋았다. 손님도 적잖이 있었다.

    그렇게 밥을 맛있게 먹고 나와

    전통가옥을 개조해 만든 푸른역사 사옥에서

    대잎차를 마시며 그간의 사제간의 회포를 풀고

    친구와도 '그르바비차'라는 영화 한 편 보고 집으로 왔다.

    그런데 컴퓨터를 켜자마자 눈에 띄는 기사 한 꼭지.

    http://kr.2007korea.yahoo.com/news/view.html?articleid=2008010606012599201

    이거야 원.ㅎㅎ

    무릇힘있고 돈있는 곳에 사람이 모이는 법이라고는 해도

    그 모양새가 너무나 노골적이라 쓴웃음이 나온다.

    며칠 전 노대통령이 신년인사 자리에서 송구영신(送舊迎新)을 언급했다.

    신년인사 하는 자리니 영신만 하면 되는데

    앞서 인사말을 한 손경식회장이 송구에 대해서도 언급해주어 고맙다 했다.

    떠나가는 자신에 대한 배려라 생각하겠다는 뜻이겠지만

    송구는 내팽개치고 온통 영신에만 정신이쏠린 사람들에 대한 서운함을

    넌지시표현한 말은 아닌가 싶었다.

    물론 그것은 노무현 대통령 개인의 소회일 뿐,

    다가오는 새로운 것에 대한 기대와 설레임 자체를

    무어라 할 수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하지만...

    제발 그 정도에서 그쳤으면 좋겠다.

    '뒤돌아 볼 겨를도 없이 앞만 보고 나아가기'는 이제 여기서 그만이었으면 좋겠다.

    행자부가 인수위에 대해

    14개 과거사위원회 폐지를 추진하겠다고 보고했다는 기사를 읽었다.

    여기에는친일 반민족 진상 규명 위원회 및 군 의문사 진상규명 위원회,

    노근리 사건 희생자 심사 및 명예 회복 위원회 등이 포함되어 있다.

    정치색을 떠나서,

    아픈 과거를 딛고 일어나기 위해서는 진작에 착수했어야 할 작업들이

    이루어지고 있는기관들이다. 그런 곳을 한두개도 아니고 몽땅 폐지하겠단다.

    모양새만 보면 행자부가 보고한 것이지만

    누울 자리 보고 발뻗는다는 말이 있듯이

    인수위와 차기 정권의 성격을파악해 '어련히 알아서' 내놓은 방안일 것이다.

    이에 대해 네티즌 반대서명이 줄을 잇는 모양이다.

    그런데 참 이상하다.

    말만 놓고 보자면 보수(保守), 수구(守舊) 세력이야 말로

    송구를 가장 아쉬워하고 신경써야 할 사람들 아닌가.

    헌데 대통령이 되기도 전부터열을 올리는일이 '과거사 청산'의 청산이다.

    진정한 보수가 아니라서일까?

    혹은 송구하는 방법을 배우지 못했거나

    다가올 새시대(?)에 대한 부푼 기대감으로 미처 그런 것따위 신경쓸 여유가 없어서일까?

    이도 저도 아니면

    어떤 이의 구(舊)는

    지키고 보전하고 싶은, 떠나감을 아쉬워해야 할 과거보다는

    감추고 지우고 싶은 구악만으로 가득차 있어서인 것일까?

    누룽지까지 싹싹 비우고 나온 그 집 밥의 선명한 잿빛이

    며칠 지난 오늘 새삼 눈가에 아른거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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