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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만일까...걷고 쓰고 그린 것들/기억의 습작 2018. 1. 9. 23:22
그림이라는 걸 그리는 게. 한때 그림쟁이의 꿈을 꾼 적도 있었는데. 그 시절의 나에게 호되게 차이기라도 한 것처럼 이제 그쪽은 돌아보지도 않고 살고 있다. 얼마전 팟캐스트로 오디오북을 듣는데 수채색연필로 여행지 풍경을 그리는 여주인공 이야기에 무슨 바람이 불었는지 그림이 그리고 싶어졌다. 언니와 새해 선물을 주고받으며 받은 사쿠라코이 30색 고체물감세트로 백만년만에 수채화에 도전. 그림 자체도 마지막으로 그린 게 까마득하지만 수채물감을 물에 풀어본 지는 정말 이십 오 년은 되었을 것이다. 가장 먼저 노랑 물감을 물에 푸는데 처음 미술학원을 찾은 초등학교 4학년 그날처럼 설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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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공지능이 소설을 읽는다면골판지 2017. 11. 30. 11:37
인공지능이 썼다는 소설을 읽었다. 피보나치수열이 등장해서 나름의 재치마저 느껴지는 초단편 소설이었다. 그런데 소설을 쓸 수 있다면 당연히 남이 쓴 글을 읽고 무언가를 느낄 수도 있어야 하지 않을까. 특이점이 와서 인공지능이 생텍쥐페리의 를 읽는 모습을 생각해본다. 를 읽은 인공지능은 인간과 비슷한 감정을 느낄 수 있을까? 이 세상의 무수히 많은 장미 속에서 단 하나의-그렇지만 꼭 제일 아름다운 것은 아닌-장미를 사랑할 수 있을까? 약속 시간이 되어 들리는 발걸음 소리만 듣고도 두근거리는 기분을 느낄 수 있을까. 이 세상 최고와 제일이 아닌 허다한 것들, 남들이 보기엔 딱히 더 가치있어 보이지 않는 것들에 대해 역시 평범하고 허다하기만 한 우리가 느끼는 마음을, 그렇지만 퍽 간절하고 지극한 마음을 같이 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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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의 내게는 불편한 소설 <속죄>보고 듣고 읽은 것들/책 2017. 11. 23. 01:14
빨책 편을 무심코 클릭했을 때만 해도 당연히 미나토 카나에의 그 인 줄 알았다. 이언 매큐언이라는 작가는 알지도 못했다. 그래도 들어보니 방송 자체는 생각보다 재미있어서 -나로서는 드물게도-익숙치 않은 작가의 책을 동네 책방에 따로 주문하고 기다리기까지 해서 사보았다. 안타깝게도 빨책 2부는 스포일러 대방출 타임이란 걸 모르고 다 들어버리는 바람에 이 책의 중요 포인트를 다 안 상태에서 읽게 됐다. 하지만 상관 없을 거라 생각했다. 속죄라는 테마 자체에 관심이 있었기 때문에 '의도치 않은 어떤 오해와 이후의 행동이 상대방의 인생을 궤도에서 벗어나게 했다고 했을 때 이 작가는 어떤 식의 속죄를 그려낼까'가 궁금했다. 그런데 소설을 읽는 내내, 그리고 마지막에 이르러서 한층 더 신경쓰인 것은 스포일러를 알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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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정직함골판지 2017. 11. 17. 12:17
나는 산만하고 기억력도 좋지 않은 편이라 뭔가를 곧잘 잃어버린다.지갑, 카드, 핸드폰, 이어폰, 출입카드...이 회사에서도 그랬다.그런데 찾지 못한 것은 거의 없었다. 이어폰이나 핸드폰 따위야 이제 고가 아이템 축에 들어가지도 못하는 물건이라자기가 쓰거나 어디 팔아치울 생각으로 가져가는 사람도 없겠지만(게다가 내 폰은 엄청 구형)지갑같은 것도 두고 온 자리나 회사 유실물 보관소에 어김없이 있는 걸 보면사람들의 작은 정직함이랄까, 좀 거창하게 말해 시민의식 같은 것이이런 데서 드러나는 게 아닐까 싶다. 오늘은 출근해서 간단한 아침을 먹고 화장실에서 양치를 하려는데내 칫솔 살균기에 작은 포스트잇이 붙어있었다. "안녕하세요? 구매부 000입니다. 제가 님의 칫솔 살균기를 건드리는 바람에 연결 고리가 깨진 것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