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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과 글의 품위골판지 2017. 11. 14. 12:54
말과 글의 본디 존재 목적은 '품위 있어지기 위해서', 혹은 '품위 있어보이기 위해서'는 아니다. 그것은 목적이라기 보다는 결과다.말과 글, 아니 그 이전에 생각에 별로 품위가 없고그렇게 되고자 하는 의지도 당장은, 혹은 어떤 특정 상대 앞에서는 없는데말과 글만 품위 있게 하려고 하면그 사이에서 생기는 부조화가 정서 상태에 악영향을 줄 뿐이다. 품위는 출력(내가 하는 말, 글)보다 입력(보고 듣는 것)을 통해서 향상시키는 편이 맞다. 품위 있는 것을 입력하다 보면 언젠가입력(내 앞에 있는 누군가의 말과 글)에 품위가 없어도 내 출력은 품위있어지겠지.성인의 경지인가. 죽는 날까지 한번이라도 오를 수 있으려나. 그때까지는, 당분간은품위 없는 말과 글에는 품위 없는 말과 글로 대하련다.물론 거기서 끝이면 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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힘 조절골판지 2017. 10. 18. 23:21
나는 왼손잡이로 태어났지만 왼손잡이를 극도로 터부시하는 문화 환경 속에 후천적으로 오른손잡이가 되었다. 그리고 지금은 오른손이 더 자유롭다. 하지만 나이를 먹고서도 여전히 왼손에도 미약한 힘이 남아있음을 발견하고 이것저것 일상 속 활동들을 하나씩 다시 왼손으로 해보고 있다. 더 나이를 먹거나 혹은 어떤 계기로 한쪽 손을 쓰는 게 여의치 않아지면 양손잡이라는 게 도움이 되겠지, 하고. 그 덕에 왼손의 감각도 꽤 돌아온 것 같다. 물론 아직도 글자는 어설프게밖에 못 쓰지만컴퓨터 마우스는 이미 왼손으로만 사용하고 있으며 밥 먹을 때의 숟가락질 젓가락질 정도도 큰 문제 없이 할 수 있게 되었다. 그런데 조금 전 헤어오일 스프레이를 왼손으로 누르려다 손가락이 미끄러져 오일을 분수처럼 쏟을 뻔했다. 왼손에 괜히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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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감각골판지 2017. 9. 27. 00:18
천재든 또라이든 뭔가 비범함이 깃든 사람의 공통점 중 하나는 어떤 류의 공감각적인 느낌이 발달했다는 게 아닐지. 이동진은 시험을 볼 때 시험 문항의 글자수를 세어 자신 이외의 어떤 수로도 나눠지지 않는 소수(17 같은)가 나오면 뾰족함을 느껴 불쾌했고 딱 떨어지게 나눠지는, 즉 약수가 많은 수가 나오면 쾌감을 느꼈다고 한다... 숫자라는 드라이하고 중립적인 대상에서 뾰족함과 둥글둥글함, 쾌와 불쾌를 느낀다는 게 좀 변태적이기도 하면서 어떻게 보면 대단히 공감각적인 느낌이 발달한 것 같기도 하다. 역시 보통 사람은 아니야. 근데 거기서 조금만 더 갔으면 위험했을 것 같다. ㅎㅎ -뒤늦게 '이동진의 57화 : [생각의 탄생] 1부'를 들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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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길이 만세보고 듣고 읽은 것들/세상을 보는 한 컷 2017. 9. 25. 23:36
5월초에 이케아에서 사온 영길이(우리집 녹보수 이름)에게서 거의 무려 다섯 달만에 처음으로 새 잎이 났다. 그것도 한꺼번에 다섯 장이나~ 아이 좋아ㅡㅋㅋㅋ 사올 때부터 잎 색이 누리끼리한 게 영 비실비실해 보였지만 수형 하나 마음에 집어들었는데 여름이 다 가도록 새 잎이 나긴커녕 해충이 알을 까질 않나 통째로 떨어지고 엎어지고 하느라 네 번이나 분갈이를 하게 되질 않나 가을~겨울 사이 죽지나 않으면 다행이라 생각했는데ㅠㅡㅠ 감격감격... 아 이 글을 쓰며 화분을 빙 돌려 속을 들여다보니 다른 줄기에도 새 잎이 돋아있네! 너무 작아 잘 안 보이지만 최소 다섯 장, 아니 열 장 이상!!! 그리고 또 그 옆에도 '움'이 트려 하고 있다! '움'하하하하ㅡ!!! >0< 남친 집에 사다놓은 녹보수도 이랬었다. 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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先祖がえり_모자를 벗고 싶은 고무나무보고 듣고 읽은 것들/세상을 보는 한 컷 2017. 9. 8. 23:59
집에서 키우는 벵갈고무나무 이파리 색이 점점 어두워지고 얼룩무늬도 점점 흐려져서 아예 아무 무늬도 없는 잎이 늘어나고 있다. (위: 유월 초, 들여온 당일 찍은 사진 / 아래 : 며칠 전인 구월초에 찍은 사진. 처음 이상을 감지한 게 칠월 초의 일이니 고작 한달 사이에 이 정도로 급격한 색 변화가 일어난 셈이다) 문제를 인식하자마자 고무나무의 위치를 북동향 뒷베란다에서 남서향 앞베란다로 옮겼지만 앞 건물 그림자에 가려 낮동안에도 여전히 충분한 광량을 확보하기가 힘들었다. 가장 햇빛이 셌던 팔월 중순에 났던 잎 세 장을 빼고는 여전히 큰 변화가 없었고 구월 들어 일조량이 줄어들자마자 다시 잎 색이 빠르게 어두워지고 있었다. 이럴 바에야 다시 원래 위치였던 내 방 옆 뒷베란다에 갖다두고 식물용 인공조명을 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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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호와 극혐 사이의 거리보고 듣고 읽은 것들/세상을 보는 한 컷 2017. 9. 1. 10:27
엊그제 출근길에 주운 메타세콰이어 이파리. 그냥 책상 위에 뒀더니 당연히도 잎에서 수분이 빠져나가 조글거리며 뒤틀리길래 물에 담가봤다. 그러자 반나절도 안 돼 물에 불린 미역처럼 다시 처음 모양을 되찾는다. 이대로 뿌리가 나서 다시 나무가 되진 않겠지만 무언가 잃었던 생기를 다시 찾는 모습, 그러면서도 물속에서 흐느적거리며 힘은 한껏 빠져 있는 모습이 묘한 힐링효과를 준다. 메타세콰이어 잎은 오늘따라 잘 빠지게 그린 눈썹처럼 얄쌍한 잎들이 취침시간 내무반의 풍경처럼, 혹은 참빗의 살처럼 가지런히, 데칼코마니를 그리며 드러누워 있는 모습이다. 책상 위에는 테이블야자가 푸릇푸릇한 머리칼을 치렁치렁 드리우고 있고. '아 나는 이런 형태의 생물의 모양을 좋아하나보다'라고 생각하고 있자니 갑자기 이 잎과 아ㅡ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