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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교단X>
    보고 듣고 읽은 것들/책 2015. 2. 27. 16:36

     

    얼마 전 모 출판사로부터 검토 의뢰를 받아 읽은 소설 <교단X(教団X)>.
    567p
    짜리 책을 만 사흘 만에 읽어치웠.

    난독증이 점점 악화되고 있는 내게 이 정도면 광속.

    저자는 나카무라 후미노리(中村文則).

    어두운 분위기의 미스터리/하드보일드 소설을 주로 쓰는 작가인데

    십 년 전에 아쿠타가와상을 수상한 경력이 있어선지

    국내에도 인지도가 어느 정도 있는 편.

     

    출판사측과 며칠 전 미리 약속을 하고 만난 게 아니라

    우연히 연락이 닿아 접선하듯(!) 책을 받았기 때문에

    가방에 넣지 못하고 손에 들고 와야했다.

    일본책답지 않게 눈에 띄는 표지 디자인과

    어깨탈구를 유발할 듯한 압도적 중량감 때문인지

    흘끔흘끔 쳐다보는 사람이 몇몇 있었다.

    (보기에 그랬다는 것이고 실제로는 그렇게 무겁진 않았다.

    이 정도 양장이면 꽤 무거워야 할 텐데...그 점은 신기했음)

    이야기는 두 교단(하나는 사이비 광신집단)에 속한 네 명의 남녀가 중심인물이 되어 펼쳐진다. 어느 날 갑자기 사라진 여인과 그녀를 찾아 교단 속으로 잠입하는 남자. 그리고 이들을 둘러싼 테러, 집단자살의 음모와 정체를 알 수 없는 교주의 존재. 사건 전개 틈틈이 인간의 뇌와 의식, ''란 무엇인가, 선과 악이란 무엇인가 하는 철학적인 질문들이 툭툭 던져진다. 최신 뇌과학 이론이 소개되기도 하는데, 호오가 갈리는 부분이겠지만 평소 그 분야에 관심이 많아서 그런지 개인적으로는 흥미롭게 읽었다.

    ...
    하지만
    지하철에 독가스를 살포해 수많은 사람들이 희생된 옴진리교 사린가스 사건이 일어난 지 어언 이십 년을 헤아리는 마당에 광신도 집단을 소재로 한 소설이라니... 처음에 살짝 시대착오적인 느낌이 들었던 것도 사실이다. 작년 이맘때라면 분명 주욱 그랬을 것이다. 그러나 세월호 사태 이후 구원파의 존재가 만천하에 알려지고 국제적으로는 IS라는 테러조직의 믿기 힘들 정도로 끔찍한 만행이 매일같이 보도되고 있는 요즘, 종교라는 이름으로 자행되는 갖은 '비현실들'은 여전히 현실이고, 아직도 현재진행형이다.

     

    인상 깊은 장면 중 하나는 한 남자 주인공이 아프리카에서 무장 종교단체에 납치되어 살해 위협에 처해지는 부분이었다. 원서가 일본에서 출간되고 한 달이 조금 지났을 무렵, 우리는 일본인 기자 고토씨가 오렌지색 죄수복을 입고 목에 칼날이 들이대어진 채 IS로부터 살해 위협을 받는 장면을 한동안 TV 화면으로 보아야 했다. 작가(나카무리 후미노리)가 그 사태를 예견한 것은 아니었겠지만, 살짝 소름 돋는 타이밍이었다. 번역 시간을 고려한다면 국내에 소개되기까지는 아직 시간이 더 필요하겠지만.

    이쯤에서 결론을 적자면,
    출간 검토 결과 이 책은 해당 출판사에서는 내지 않게 되었다.

    이유는 밝히지 않는 걸로..
    개인적으로는 솔직히 아쉽다.
    난독증과 싸워가며 벽돌만한 두께의 책을 사흘 만에 다 읽었기 때문만은 아니다.


    무교도를 표방하는 나는 꽤 여러 차례 개신교를 비롯한 다양한 종교로 나를 포섭하려는 도전(?)을 지속적으로 받아왔다. 하지만 영생, 마음의 평화, 사랑, 축복 등, 내가 종교에 귀의하게 되면 얻게 될 유무형의 이득(?)에 치중한 포교에 나는 도무지 마음이 기울지 않는다. 결과와 과정이 뒤바뀐 것 같기도 하고, 더 중요한 '무언가'가 빠져있다는 생각도 든다(이 이야기는 언젠가 기회가 되면 풀어보고 싶지만 여기서는 생략). 성경과 불경을 직접 읽어보는 것은 그나마 낫다. 하지만 내 우매한 머리로 이해되지 않는 부분이 많아 아직은 벽을 느낀다. 그에 비하면 차라리 이런 소설이 나 같은 타입의 사람에게는 나은 접근방식인지도 모르겠다. 종교라는 것, 선과 악이라는 것, 그리고 가장 근본적으로 ''라는 것에 대해 생각해 볼 것을, 보다 가까운 곳에서, 덜 집요하게 누군가 내게 말 거는 느낌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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