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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취중진담(醉中眞談)-'미처 못다한 말들'
    보고 듣고 읽은 것들/책 2004. 8. 6. 00:44


    코엑스에서 열리고 있는 SICAF 행사장 한 쪽 구석에 자리잡은 회사 부스에서 죽치고 있자니

    여간 따분한 게 아니다.

    김밥이며 과일까지 찬합에 꾹꾹 담아와 피서를 대신하는가족들의 왁자함에 나도 묻어볼까해서

    '저 잠시 한 바퀴 돌고 올게요'

    한 마디 툭 던지고 나와 행사장을 휘 둘러보기 시작했다.

    이리저리 인파에 떠밀리다가 한 구석에서

    요란한 복장의 나레이터 모델도 경품도 삐까번쩍한 장식도 없는데 사람으로 붐비는 부스를 발견했다.

    이름하야 '아름다운 가게'

    한 번 쯤 주인을 거친듯한만화책 동화책 장난감 문구류 인형..등

    조무라기들의 손때묻은 물건들이 먼지를 털고 새로운 주인을 기다리는 곳이었다.

    요새 아이들도 이런걸 좋아하나 싶은 마음에 고개를 기웃거리다가

    구석진 곳 선반에서 뜻하지 않게도 보물을 발견했다.

     

     

     

    故 송채성 씨의 '취중진담' 1~3권...

    놀랍고 반가운 마음에 얼른 집어들어 가격을 물어보니

    권당 500원이란다...세 권 합쳐 울 동네 구멍가게에서 파는캔맥주 하나 값이다.

    좋은 취지야 이해가 가지만 왠지 서글프군.

    '집에 이미 있는데...'

    잠깐동안의 머뭇거림을 접자 책들이 내 가방 안에 있었다.

    '보여주고 싶은 친구도 있었는데 잘됐네.'

     

    본격적인 데뷔작이었던 이 작품은,

    그림체가 많이 변했지만사회의 소수,약자에 대한 따뜻한 시선만은 여전히 잃지 않고 있는

    'Mr.Rainbow'(미완결)와 함께 사실상 그의 유작이 되어버렸다.

    처음 접한 것은 수년 전 여성만화잡지에서 였는데,

    같은 제목으로 매번 다른 이야기가 펼쳐지는 옴니버스 형식이었다.

    주인공은

    술 한 잔 걸치지 않고서는 좋아한다 한 마디가 죽어도 입 밖으로 나오지 못하는

    소심한 우리들..

    포장마차 안의 백열전구처럼

    흔들리는 듯 유약하면서도 끝까지 노오란 따뜻함을 잃지 않는작품 속캐릭터와

    손으로 대충 그은 듯한 흐느적거리는 선.

    바로 내 앞에서 취중진담을 중얼대는 듯한 등장인물들의 대사.

    술에 취해멍한 듯하면서도깊은 표정에

    .......

    나는 그만 매료되어 버렸다.

    그리고 이 모든 것을 섬세하게 그려낸 인물이 남자라는것에 놀랐다.

    슬플 때나 기쁠 때나 그들 곁을 떠나지 않는 술을 앞에 두고 토해내는 고해성사가

    한낱 종이 속글 같지 않게 않게 가슴에 와 닿는다.

     

    이런 작품을 선사한 그였건만

    지금은 세상에 없다.

    직간접적으로 내가 접한

    젊은 남자 만화가의 세 번째 죽음이었다.

    휴학하고 잠시 화실생활을 할 적에

    어시스트 했던 젊은 작가 한 분이

    태어나 스물 아홉해를 마치지 못하고 하늘로 간 것이 재작년 이 맘때..

    하늘이 무너진 듯 비가 오던 날..

    문하생이었던 내가 조문객이 되어

    야간버스를 타고 울산으로 향하던 기억이 생생하다.

    같은 해 봄에는 잠시 가입했던 만화 서클의 초대멤버가

    병으로 역시 젊은 나이에 세상을 떴었다.

    그리고 올해 송채성씨의 죽음을 들었다.

    만화를 사랑하던 젊은 남성이라는 것 외에 아무런 연관성도 없는 그들이지만

    '오백원'이라는 가격만큼이나

    기억 속에 안타깝게 새겨진사람들이다.

     

    집에 오는 길에 마트에서 맥주를 샀다.

    마침 오늘은 캔맥주 6개들이 한 세트를 6000원에 특가판매한다길래

    두 봉지 더 들어있다는 오징어땅콩 묶음과 함께 냉큼..

    사실 소주를 사야 할 것 같은 날이지만

    그럼 엄니가 꼬치꼬치 캐물으실게야...-_-...

    술친구에게 주기 위해 따로 꽂아놓은 '취중진담' 세 권 앞에

    맥주랑 오징어 땅콩을 놓아두니썩 잘 어울린다.

     

    가끔은, 하늘나라에 있는 사람들이

    땅나라에 사는 우리들과 술 한 잔 기울이며 취중진담 늘어놓을 수 있다면 어떨까?

    조금 무서우려나?

    하지만 그들도 우리처럼

    가슴속에 담아두었다가

    미처 못 다하고 가야했던..그런말들이 많겠지..

    그들을 위해

    내 대신 스팅의 목소리로 권주가나 들려주어야겠다..

    '모두들, 그 곳에서 안녕하시죠?^^'

     


    Sting "Angel Eyes"(Leaving LasVegas O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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