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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불 속에서골판지 2015. 11. 2. 23:21
2012년 12월 20일 아침. 눈은 떴지만 이불을 걷고 일어날 수가 없었다. 이 이불 바깥쪽에 설마 전날 저녁 내내 티비에서 떠들어대던, 그런 믿을 수 없는 세상이 펼쳐져있으면 어쩌지...아냐 아닐 수도 있으니 일어나 티비를 켜볼까...하지만 그랬다가 정말이면 어쩌지... 고요한 원룸 구석 침대 위에서 이불을 머리 꼭대기까지 뒤집어쓰고 무의미한 자문자답 속에 한참을 뒤척거리고 있었다. 등교거부하는 초등학생도 아니고...삼십대중반 어른의 행동이라 하기엔 민망하고 유치한 것이었지만 일단 일어나면 나는 아무도 없는 원룸의 적막함을 견디지 못해 결국 티비든 컴퓨터를 켤 것이고 그러면 그 속에서 무차별적으로 쏟아져나올 말과 글을 혼자서 감당할 자신이 정말로 없었다. 겨우 마음을 다잡아 티비를 켰고 십초도 안 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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케빈에 대하여(We need to talk about Kevin)보고 듣고 읽은 것들/활똥사진 2015. 10. 18. 00:20
1. 아이 둘을 키우며 학교 선생님을 하는 고교 동창이 있다. 결혼을 일찍 해서 아이들도 내 동창들 아이들 가운데 가장 큰 편이다. "너가 애들 키우느라 고생은 많지만 대신 제일 먼저 다 키울 테니 고생도 네가 제일 먼저 졸업할거야. 우린 언제 따라간다니?" 이 정도가 그녀가 육아로 힘들어할 때마다 다른 친구들이 해줄 수 있는 유일한 공치사였다. 그리고 그 알량한 위로는 다음과 같은 그녀의 단호한 대답에 단박에 무색해지곤 했다. "노노... 부모의 책임에 졸업이란 없더라. 평생, 그러니까 죽는 그 날까지 아이들은 내 책임이자 애프터서비스 대상이란 거지. 당장 우리들 스스로를 생각해봐도 그래. 우리도 이 나이에도 아직까지 어떤 식으로든 부모님 그늘을 못 벗어나고 있잖아?" (일동 뜨끔;;;) 여기서 친구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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즐거운 나의 일골판지 2015. 10. 9. 17:44
1. 행사 일주일 앞두고 주최측 담당자가 돌연 퇴사. 후임 없냐고 묻자 '없는 걸로 안다. 행사 잘 치루라'고 유체이탈 화법 구사해서 사람 벙 찌게 만듦. 통역 자료고 뭐고 하나도 받은 게 없어 백방으로 연락하자 다른 직원 왈, "쉬는 날 담당자도 아닌 사람에게까지 연락하고...솔직히 기분 나쁘다" 라는 소리까지 들음. 그쪽 직원이 갑자기 관두는 바람에 아무것도 받은 게 없어 부득이하게 연락한 거라고 하자 그제서야 사과했지만, 이미 들은 말이 머릿 속에서 사라지지는 않는다. 2. 매년 비슷한 시기에 연례행사로 하던 행사의 통역료가 확 깎여 입금되어 담당자에게 확인차 전화함. 그 전까지 자잘한 부탁이며 뭐며 할 때는 그렇게 정중하던 담당자가 돈 얘기-그것도 다 끝난 행사의-가 나오자 목소리가 바로 굳기 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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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또또 <ugly> 무한반복골판지 2015. 8. 17. 18:37
이유는 모르겠지만 일 말아먹은 날이면 나도 모르게 무한반복하게 되는 노래가 있다. 바로 2ne1의 ... 별로 좋아하는 그룹은 아닌데... 일 망치고 찌그러진 스스로의 모습을 'ugly'하다고 무의식중에 느끼는 것인지? 아무튼 요며칠, 쥐구멍이라도 있으면 정말이지 칵 들어가고 싶다. BGM : 당연히, 2ne1의 ========================== -またまた「UGLY」 ヘビロテ中- なんでだろ。今日みたいに仕事で散々失敗した日に限って、思わず、でもほぼ必ずといっていいほど、ヘビロテしてしまう曲がある。 それは、2NE1の「UGLY」。。 2NE1さんのこと、別にそんな好きでもないのに。。 できない自分の惨めさを、無意識のうち見た目の惨めさに重ねてしまってるのだろうか。 まぁ。。どっちだっていいや。正に穴があったらしばらく閉じこも..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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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이라서...골판지 2015. 7. 22. 01:43
자주 가는 통역사 카페에 어제 글이 하나 올라왔다. 영어 통역 구인글이라 나와는 상관없었지만 습관적으로 읽었다. 전화로 한 30분만 비즈니스 통역을 해줄 사람을 찾는데, 통역은 큰 부담 없이 그냥(?) 하면 된단다. 부담없이 그냥 하면 되는 통역이란 것은 클라이언트의 착각, 혹은 '상상 속의 동물'일 확률이 99%지만 그건 차치하고라도.. 그래도 되는 이유가 뭔고 하니, '자기들이 (전화 상대방보다) 갑이기 때문'이란다. Aㅏ... 갑자기 뒷골이 땡긴다...맹렬하게... 어떤 관계에서나 갑을관계가 자연스럽게 성립되고 우선시되는 나라. 요즘 우리나라에 대한 내 인상 중 하나다. 사회라는 거대한 피라미드 속에서 이리저리 부대끼고 치이고 때론 당하고 살면서도 한뼘이라도 나보다 아래에 누가 있으면 그 자리를 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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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일선물하면 뭐니뭐니해도보고 듣고 읽은 것들/책 2015. 7. 21. 22:14
책이지! 친구가 왜 나에게 경제 관련 책을 선물해준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그래도 고마울뿐...ㅎ 피케티의 이 아닌게 어디람...ㅜㅡㅜ 화폐경제라... 강산이 한번 바뀌기 전에 출판사에서 일하던 시절 '돈이란 주제'로 그리고 '내 주제에' 원고를 쓴답시고 계란으로 무던히도 바위를 치던 기억이 새록새록... 아무나 읽지도 못하는 경제책을 아무나 쓰려하다가 말 그대로 '가랑이가 찢어질 뻔했던' 아픈 추억이 떠오르는 제목이다. ㅎㅎㅎ 그나저나, 책을 보내준 친구에게는 '잘 읽겠다'며 내일모레 휴지가 될 어음같은 약속을 하였으나... 책장에는 사놓고 거의 읽지 못한 경제 관련책들이 한무더기.. 자괴감이 밀려온다. ㅠㅡㅠ